글로벌 증시가 다시 요동을 치고 있다. 국내증시도 유럽계 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 주가 하락폭으로 본다면 스페인보다 더 클 만큼 예상외로 충격이 크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 시각은 커다란 변화가 없다.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나 외평채 가산금리는 작년 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 달 전이기는 하지만 미국 무디스는 우리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A등급을 유지하는 국가 중에서는 보츠와나와 함께 유일하다.

해외 시각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유럽계 자금이 대거 이탈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유럽 금융사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등과 같은 특정 사건으로 마진 콜(margin call·자본 부족)을 당하면 이에 응하기 위해 디레버리지(deleverage·자산회수) 대상으로 어느 국가를 선택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그리스와 스페인의 일부 금융사처럼 마진 콜에 처해 긴급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보유자산을 처분, 대응해야 한다. 전제는 적게 처분해야 나중에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 인식과 달리 위기 발생국보다 위기를 피해갈 것으로 보이고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를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한다.

똑같은 논리를 이번 사태에 적용해 보면 유럽 금융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은 보유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어 대규모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 이 시장에서 금융사들이 마진 콜에 응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처분하면, 그 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더 팔아야 한다.

반대로 한국과 같은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들은 팔려는 사람이 적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초과수요가 발생하거나, 최소한 위기가 발생한 국가보다 수급 사정이 좋다. 이 때문에 마진 콜에 처한 금융사들이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고 이들 국가는 당초 기대와 달리 외국자금의 대거 이탈로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다.

프랑스 대선, 그리스 총선 등이 몰려 있던 지난 6일 슈퍼선데이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충격을 크게 받은 것도 작년 12월 말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추진 과정에서 유럽계 자금이 한국, 특히 삼성전자에 집중 유입돼서다. 결국 이번에도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 따라 국내 주가와 환율 흐름이 전적으로 좌우되는 ‘윔블던 현상’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윔블던 현상이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의 금융회사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당한 것을 계기로 주인인 우리 국민보다 외국인이 판치는 의미로 자주 인용돼 왔다.

특정 국가에 유입된 외국자본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윔블던 현상이 크게 우려됐으나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발전 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역기능이 더 많이 반복돼 왔다. 가장 큰 역기능은 외국인 자본이 우리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 유출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경제정책도 무력화된다. 외국자본은 고객의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갈수록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국내기업들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 밖에 각종 양극화와 소득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 윔블던 현상을 줄이려면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외자 유출입에 따른 피해가 더 커지는 상황에서 외자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외자정책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국내자본의 육성, 국내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국민도 글로벌 시대에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어려울 때 비관론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증시의 최대 적(適)이다.

오히려 디레버리지 과정에서 경제여건에 비해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한 것은 후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고객의 수익을 내줘야 하는 금융사 입장에서 자본확충만 된다면 자본이득과 환차익이 동시에 기대되는 한국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