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 "과학은 농사와 비슷…투자한 후 기다려야 결실맺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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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의 맛있는 만남
서울대서 세라믹 소재 연구…초대 교과부장관…행정가 변신
주말엔 충북 감곡서 밭 농사…갈증해소엔 막걸리가 딱이죠
출연硏 통폐합 지속적 추진, 연구원 자긍심 갖게 할 것
서울대서 세라믹 소재 연구…초대 교과부장관…행정가 변신
주말엔 충북 감곡서 밭 농사…갈증해소엔 막걸리가 딱이죠
출연硏 통폐합 지속적 추진, 연구원 자긍심 갖게 할 것
미소를 머금은 표정, 차분한 말투, 밭일을 좋아하고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취향까지….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60)은 ‘권위주의’와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 같다. 이명박 정부 들어 두 번째 장관급 고위직을 맡고 있지만, 마음씨 착한 키다리 아저씨 이미지 그대로다. 그의 키는 191㎝.
10조원이 넘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배분·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김 위원장을 서울 광화문에 있는 평양음식 전문점 ‘평가옥’에서 만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남자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먹거리 철학이란다. 그렇지만 나이 먹을수록 고향음식에 대한 향수가 커진다고 했다. 평가옥을 가끔 들르는 까닭이다. 평안북도 의주가 고향인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할머니를 따라 모두 부산으로 내려왔다.
“음식은 나이 들면서 어렸을 때 먹던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빈대떡 이런 거는 맨날 먹는 게 아니지만 명절날 항상 먹던 음식인데…이런 맛이었지.” 평양 향토 음식인 어복쟁반이 차려지자 김 위원장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육수를 부은 놋쟁반에 소고기 편육, 만두, 소고기 육전, 삶은 달걀, 채소와 버섯이 수북이 담겨 나왔다. 반주는 김 위원장이 즐겨 마신다는 막걸리. 어복쟁반이 끓기 전에 먹을 안주로 녹두지짐과 수육을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과학 분야 최고 연구자이자 행정가다.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블레즈 파스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공대 교수로 재직할 때는 세라믹 소재 연구로 세계 톱 수준의 연구 성과를 냈다. 2008년 2월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맡은 후로는 행정가로 변신했다. 울산대 총장(2008년), 한국공학한림원 회장(2011년)을 지냈으며 지난해 2월 우리나라 R&D 예산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부임했다.
▷이북 음식을 드실 기회가 자주 있나요.
“고향이 평북 의주이고 출생지는 부산이죠. 우리 때는 부산이 출생지인 사람이 많아요. 집안이 굉장히 독실한 크리스찬이에요. 1·4 후퇴 조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내려오신 거죠. 집사람도 개성사람입니다. 빈대떡, 만두 이런 거 지금도 집에서 많이 먹고 냉면도 아주 좋아하죠.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면 물냉면일 거 같아요. 우리 아버지가 냉면을 드시면 무지 빨리 드셨지요. ‘냉면은 빨리 먹어야 맛있느니라’ 하시면서.”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고 들었습니다.
“막걸리를 좋아한 건 10년쯤 됐죠. 취미 중 하나가 농사를 짓는 건데 충북 감곡에서 조그만 밭농사를 해요. 밭일 하다 한잔 마시면 진짜 맛있어요. 갈증도 해소되고 힘도 생기고.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막걸리를 담그려고 열 번은 시도해본 것 같아요. 인터넷도 뒤지고 친구 어머니한테 비법도 받고. 시장에 가면 누룩을 팔아요. 그걸 사다 열 번쯤 담갔는데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세 번쯤 술 같은 게 되고 나머지는 영…. 실패한 것도 마시면 알딸딸해지긴 하는데 들큼하기도 하고 별로예요. 열 번 고생하다 내린 결론이 사서 마시는 게 제일 낫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농사가 그리 잘 어울리지만은 않는데 밭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1991년 연구 연가를 받아 미국에 가서 1년 지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현지 연구원의 집에서 살았어요. 굉장히 넓은 잔디밭과 꽃밭을 생전 처음 관리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그걸 좀 배우자 했고 1997년 땅을 좀 사서 시작했죠. 200평 정도 밭에 온갖 푸성귀를 다 키웠죠. 요즘은 바빠서 잘 못해요. 농사를 지으려면 규칙적으로 가야 하는데 1주일만 안 가면 밭이 완전 쑥대밭이 되죠.”
▷대학 때 조정선수였다고 들었습니다. 서울대에 조정반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서울대 조정반이 잘했어요. 전국체전에서 은메달까지 땄으니. 치과대 학생들이 주축이었는데 공대생인 저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붙잡혀갔죠. 당시 진짜 열심히 운동했죠.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TV 생중계도 했어요. 문무전(文武戰)이라는 행사였는데 해군사관학교와 서울대의 조정경기를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의 대결처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죠. 제가 나갔던 게 제1회 문무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지만 문무전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문이 무를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다행인지 모르지만 졌어요.”
막걸리로 목을 축인 다음 ‘소폭’으로 주종을 바꿨다. 김 위원장은 60세의 나이에도 소폭 10잔 이상을 마시는 체력을 자랑한다. 대화를 메모하느라 정신없는 취재진의 접시에 어복쟁반을 덜어주며 위로의 말도 건넸다. “나중에 하고 술 비우세요. (인터뷰) 부족하면 다음에 계속하면 되지.”
▷국과위가 출범한 지 1년 조금 지났습니다.
“국과위는 완전히 새로 생긴 조직입니다. 민간인, 각 부처 파견 공무원을 모아 만든 것이어서 처음부터 잘 굴러가는 게 쉽지 않았죠. 서로 랭귀지(언어)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달랐던 탓이죠. 1년쯤 지나니 이제 일이 좀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일본이 국과위와 같은 조직을 만들려 하고 있어요.”
▷정부 출연연구소 통합을 추진했는데 18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출연연구소 통합이 지연된 건 정말 아쉬운 일이죠. 국회가 제대로 논의 한번 안했습니다. 19대 국회가 열리면 다시 제출할 것입니다. 정권 마지막에 왜 이런 걸 하느냐고 하는데 출연연구소는 정부 조직이 바뀌는 것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부처가 어떻게 바뀌든지 정부 출연연구소는 덩치를 키워 정부에서 멀리 떼어 놓아야 합니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야 연구원들이 자율성과 자긍심을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합니다.”
"젊은이들 도전정신이 '스트롱코리아' 만들죠"
▷내년에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 예산 소요처가 늘어납니다. 대학에서는 기존 지원금이 줄어들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예산이 매년 10%씩 늘었지만 내년에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균형 재정에 워낙 중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예년과 같이 증액하기가 쉽지 않아요. 과학비즈니스벨트에 큰 돈 들어가는 것도 맞고. 과거에 해오던 것을 조금씩 줄여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려하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과학기술자들이 불평하는 것은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과학벨트에 만드는 기초과학연구원도 결국 R&D의 큰 부분 아닌가요. 큰 걸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해야 하죠. 한 분야에서 왕창 줄인다기보다 조금씩 줄여야죠. 중복 사업 그런 데서도 예산을 많이 아껴야죠. 중복 분야 기관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자료도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돈이 줄어들면 합리적이라고 할 사람이 없죠. 왕창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합니다.”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는데 ‘스트롱 코리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도전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 멘토니 이런 아저씨들이 ‘우리 때는 행복했는데 너희들은 불행하다’고 말하는데 그거 말이 안 되는 거죠. 1969년 고등학교 졸업할 때 칠판에 써 있던 게 기억에 선명해요. ‘대망의 70년대 국민소득 1000불, 수출 100억불.’ 그때 젊은이들은 진짜 길이 없었죠. 저보다 조금 위 선배들은 돈 벌이를 위해 대학 졸업하고 서독에 광부로 가던 시절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훨씬 더 여유롭고 길도 많아졌습니다. 국과위가 이공계 르네상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진짜 해보고 싶은 것은 대학에 기업가정신, 도전정신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게 대기업인데 사장에 오를 확률은 수천분의 1에 불과하고 45~55세에 퇴직해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면 인생에 후유증이 크잖아요. 20대에 몇 번 실패하는 게 무슨 부담인가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그래야죠.”
▷대학, 출연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산업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의 트랜지스터 연구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시작된 1940~1950년대에 그게 뭐가 될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죠.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었던 거예요. 거기서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돈을 들여 사준 것도 정부고. 그로 인해 나중에 전자산업이 커진 거죠. 정부의 R&D는 말이 안 되는 것을 지원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
오후 10시 식당 마감 시간을 넘겼지만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3시간여 이어진 ‘맛있는 만남’ 덕분에 마무리 음식을 더 시킬 수 없었다. 평가옥의 간판 음식인 냉면을 먹어야 할 차례지만 배가 불러 모두 포기했다.
김도연 위원장 단골집 평가옥
어복쟁반·냉면 유명한 이북음식 전문점
어복쟁반, 만두, 냉면으로 유명한 이북 음식 전문점. 1935년 평양에서 ‘제일면옥’으로 출발했으며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의 평가옥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0년 전. 피가 얇고 속을 꽉 채우는 개성식 만두 스타일이 특징이다. 두부와 고기가 꽉 차 있어 담백하고 부드럽다. 반원 모양으로 만들어 집에서 만든 것처럼 정감 있는 모양새다.
어복쟁반은 소고기 편육을 놋쟁반에 담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다. 평양 상인들이 흥정을 쉽게 풀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두와 두부, 고소한 양념으로 재운 불고기와 낙지를 넣고 매콤하게 끓이는 만두전골도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냉면은 밍밍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육수의 간이 센 편이나 메밀 향이 강해 균형이 잡혀 있다는 평가다. 고기완자를 올려 내는 것도 이 집의 특색이다.
분당 정자동의 본점과 서울 삼성동, 양재동, 잠실, 반포, 광화문 등 5곳에 분점을 두고 있다. 어복쟁반(대) 6만6000원, 만두전골(1인) 1만7000원, 녹두지짐 1만1000원, 평양냉면 1만원, 만둣국 1만원. (02)732-1566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