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가능성이 높아지자 유럽연합(EU) 등이 이를 막기 위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돈줄을 쥔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은 “긴축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면 유로존을 떠나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리스 정치권은 반발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대표는 “EU와 독일은 유럽인들의 삶을 놓고 벌이고 있는 포커 게임을 중단하라”고 받아쳤다.

시장참여자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몰고 올 파장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의 운명을 4가지 시나리오로 전망했다.

(1) 유로존 남지만 긴축안은 거부

첫 번째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되 긴축안을 거부하는 것이다. 2차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시리자의 치프라스 대표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긴축이냐, 유로존 퇴출이냐’를 두고 선택하라는 EU의 요구에서 벗어난 ‘제3의 길’인 셈이다.

이를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최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물론 독일 일부 지역까지 유럽 전역에서 반(反)긴축 정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긴축과 성장을 조합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자는 정치권의 분위기와도 맥이 닿아 있다. 또 그렉시트(Greek+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인한 유로존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2008년 금융위기와 맞먹는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진짜 문제는 그리스가 아니라 스페인과 이탈리아”라며 “위기가 이들 국가로 확산되면 유로존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스의 탈퇴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비용이 1조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 그렉시트

WSJ는 그렉시트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2차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 구제금융 합의안을 파기하면 EU와 국제 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 지원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계획 없는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구제금융 지원이 끊기면 그리스는 만기 도래하는 국채를 갚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국민들이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인출하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은 불가피하다. 그리스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리스 중앙은행은 유로화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ECB가 그리스 중앙은행의 유로화 발행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크마(그리스 옛 통화)가 부활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컨설팅업체 컨트롤리스크스의 데이비드 리 분석가는 “2차 총선에서 이변이 없다면 그렉시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 긴축안 재협상

2차 총선에서 신민주당과 사회당(PASOK)이 승리하면 긴축안 재협상에 나설 전망이다.

이들은 1차 총선 이전 연정을 구성해 EU와의 협상 및 긴축재정 집행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최근 총선에서 참패하자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해 긴축안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제는 재정 긴축을 늦추면 그만큼 추가 구제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U와 IMF는 추가 지원이 힘들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낮다. 여론조사 결과 현재 시리자가 1위(20%)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4) 그리스의 회개(?)

마지막 시나리오는 그리스가 정치적 갈등과 논쟁을 멈추고 약속한 긴축정책을 이행하는 것이다.

올해 중반까지 대규모 긴축을 이행하면 예정대로 추가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차 총선에서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확인한 그리스 정치권이 이를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분석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