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사채업자와 전쟁…1597억 추징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 조모씨로부터 급전 200만원을 빌린 여대생 A씨. 연 120%의 고리에 매달 돌아오는 이자를 갚기도 힘겨웠다. 그러자 조씨는 “이자를 갚으려면 꺾기(연체이자를 원금에 가산한 금액을 재대출하는 것)를 하는 게 낫다”고 꼬드겼다. 그 말대로 꺾기 대출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A씨의 원리금은 순식간에 2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여러 곳에 룸살롱 단란주점 등을 소유한 채 조직폭력배까지 거느린 조씨는 A씨를 자신의 유흥업소에 넘겨 돈을 갚도록 했다. 조씨는 이 돈을 친인척 차명계좌를 이용해 관리하는 등 상습적으로 세금을 탈루하다 적발됐다. 국세청은 조씨를 상대로 15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외제차 몰면서 호화생활

국세청은 최근 이 같은 악덕 사채업자 253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총 1597억원을 추징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대부업자 123명의 탈루 혐의를 포착, 이날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공개한 악덕 사채업자·대부업자들은 터무니없는 고금리로 돈을 빌려준 뒤 교묘한 수법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없게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뒤에는 폭행, 협박, 인신매매까지 서슴지 않으며 자금 회수에 나선 것도 똑같았다.

미등록 사채업자인 최모씨는 영세 서민에게 고리로 자금을 빌려준 뒤 자신은 강남 고급 주택가에서 최고급 외제차를 몰면서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최씨는 2000만원을 연 120% 이자로 빌려간 B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그의 전세보증금을 강제로 빼앗았고 이를 비관한 B씨는 자살을 택했다. 최씨는 이런 식으로 받은 33억원의 수입을 신고하지 않아 국세청으로부터 소득세 16억원을 추징당했다.

○상장사 괴롭히는 사채업자도

국세청은 이번에 상장사 전문 대부업자들을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자금난에 처한 상장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대여하고 고리의 이자를 수취한 뒤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다수 포착됐기 때문이다. 실제 명동 전주 50여명으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을 모집한 사채업자 김모씨는 자금난을 겪는 상장사 대주주에게 주식을 담보로 유상증자 대금을 선이자 5%, 연 120%의 고리로 빌려준 뒤 연체시 주가조작 등을 통해 담보 주식을 대량 매도하다 적발됐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불법 사채업자들이 폭행, 협박, 강탈을 일삼으면서 살인적인 고금리로 돈을 벌고도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는 등 문제가 심각해 서민대책 차원에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며 “특히 타인 명의로 사채업을 영위하는 명의 위장 사업자에 대해서는 실제 전주를 끝까지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