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프랑스 국가로 지정된 ‘라 마르세예즈’는 라인강변으로 출정하는 용사들의 심경을 그렸다. 가사만 보면 노래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깝다. ‘나가자 조국의 젊은이들아, 영광의 날은 왔다. 피 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리자….’ 그래선지 국가로 지정됐다가 철회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의 작사자는 프랜시스 스콧 키라는 시인 겸 변호사다. 영국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의 맥헨리 요새에 꿋꿋하게 휘날리는 국기를 보고 감격해서 지었다고 한다.

‘애국가’ 작곡에도 국기와 관련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1931년 안익태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직후 찾은 한인교회의 국기 게양대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고 울컥 감동한 게 계기가 됐다. 예배가 끝나고 일동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가사에 맞는 악상을 구상했다. 다과회 자리에서 목사의 권유로 첼로를 잡은 안익태는 방금 떠오른 멜로디를 반복 연주했고, 교인들이 이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엔 후렴이 없는 미완성이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의 악보가 완성된 것은 1936년 베를린에서였다.

국가에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민이든 관이든 중요 행사에 애국가를 부르는 이유다. 때로는 조국애로 뭉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1인당 GDP가 80달러 안팎이던 1964년 서독 함보른시 강당에 300여명의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였다. 차관을 얻기 위해 서독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온갖 험한 일을 마다않던 그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나라가 못 사니까 젊은이들이 이 고생을 하는 걸 생각하니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만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 애국가를 합창할 때 흐느낌이 시작됐다. 나중엔 대통령도 울고 참석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통합진보당이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매년 거액의 국고보조금과 의원 세비를 챙기면서 나라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많다. 야권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례 규정에 애국가 제창이나 연주를 생략하는 ‘약식 절차’를 인정하고는 있다. 그러나 창당대회 같은 중요 행사에서도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설립되고 보호받는 정당이 나라의 상징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 그렇다면 아예 나라를 떠나는 게 어떨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