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13일 오후 1시23분 보도



“돌다리도 수백 번 두드려보는 회사입니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성장해왔지만 비약적인 발전은 없었죠.”

한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그만큼 애경그룹은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애경유지공업 애경화학 제주항공 등 계열사가 30개에 이르지만 애경유화 한 곳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있다. 보수적인 행보를 보였던 애경그룹이 최근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나섰다. 애경유화는 지난달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투자를 담당하는 AK홀딩스와 화학제품제조 사업을 담당하는 애경유화로 분할키로 결정했다. AK켐텍 애경화학 제주항공 등 다른 계열사들은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다.

○‘가족경영’ 틀 깰까

1954년 설립된 애경그룹은 작은 비누회사(애경유지공업)에서 화학·유통·부동산·항공을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4조3000억원을 올렸다. 평범한 주부였던 장영신 회장은 남편인 고 채몽인 회장이 197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자 1972년부터 회사를 이끌었다. 장 회장이 2004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공식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장남인 채형석 총괄 부회장이 그룹을 총괄하고 있다.

채 부회장은 1985년 애경유지공업에 입사해 경영 역량을 키웠다. 애경백화점 구로점(1993년)을 세우며 유통업계에 진출, 애경그룹의 사업확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남인 채동석 애경그룹 유통부동산부문 부회장은 애경백화점 등 유통사업을 맡고 있다. 3남인 채승석 사장은 애경개발 등 부동산 부문을 담당한다. 딸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과 사위 안용찬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 부회장은 생활용품 부문을 책임진다.

애경그룹은 가족경영으로 유명하다. 주요 계열사인 애경유지공업(100%), 애경유화(33.15%)의 지분을 오너 일가가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에 비해 오너의 소유권이 명확하다.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 없이 2세 경영체제로 순조롭게 전환했다.

○사업 부문별 독립경영 이뤄질까

애경그룹은 40여년 전 지분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채 회장이 1970년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3남 1녀에게 지분을 상속해서다. 당시부터 애경유지공업의 최대주주는 장남인 채형석 총괄 부회장이었다. 업계에선 추가적인 지분승계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전포인트는 사업 부문별 독립경영이 이뤄질지 여부다. 지주회사체제 도입은 궁극적으로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을 목적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인 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채형석 부회장의 경영권이 한층 더 강화될 것인지, 사업 부문별로 다른 형제들의 독립경영이 보장될지 여부가 업계의 관심사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애경그룹은 사업 부문별로 책임규명이 불분명한 상태”라며 “지주회사 전환이 독립경영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삼양사와 비슷하게 사업 부문별로 형제들의 지분을 정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제주항공 등 IPO 추진

애경그룹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이후 일정기간 그룹 차원이 아닌 사업 부문별로 신성장동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애경그룹은 애경유화 애경화학 AK켐텍 등 화학 부문, 애경개발 ARD홀딩스 AK플라자 등 유통·부동산개발 부문, 애경산업 제주항공 네오팜 등 생활·항공 부문으로 나눠져 있다.

화학 부문에선 바이오디젤, 리튬2차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생활·항공 부문에선 제주항공이 지난해 설립 5년 만에 흑자전환하면서 공격적으로 신규취항하고 있다.

각 계열사들은 신규사업을 키우기 위해서 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상장주관사를 선정한 AK켐텍과 애경화학은 내년 중 IPO를 목표로 한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제주항공 애경산업 등 다른 계열사들도 상장 가능성이 높다”며 “오는 9월 애경유화가 분할되고 지주회사체제가 시작되면 IPO도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