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웠다. 이 시대 최고의 협상 전문가. 세계 1위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강의의 주인공. 베스트셀러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인상은 그에게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말투는 어눌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난 뒤에는 그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협상에서 중요한 건 힘과 논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협상 원칙을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미국의 대북 협상 등 크고 작은 협상을 예로 들어가며 “목표에 집중하라” 같은 핵심 협상 전략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국내외 경영대가들의 통찰력을 담아내는 릴레이 인터뷰 ‘경영구루를 만나다’ 첫회로 다이아몬드 교수를 만났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 그림을 그리라든가, 감정에 치중하라는 등의 전략들은 선천적인 것 같다. 학습으로도 얻을 수 있나.

“물론이다. 내 책에 나오는 400여개 사례들은 이런 기술들이 학습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심호흡을 한 뒤 식당에서 할인받는 것 등 작은 것부터 연습해보라. 내 책을 읽은 66세 할머니는 책을 덮자마자 전기회사에 전화해 노인 할인 정책을 내세워 1000달러를 환불받았다. 이런 훈련을 계속하면 사람 다루는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몇 가지 중요한 질문만 던지면 입과 마음을 연다.”

▶협상 전문가이지만 실패한 적도 있을 것 같다. 인생 최악의 협상은.

“10년 전쯤 남아프리카 출신 사업가 형제가 나에게 다이아몬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했다. 지분 50%도 준다고 했다. 당시 리먼브러더스가 산출한 회사 가치가 9억달러에 달했다. 4억5000만달러어치의 지분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흥분했고 초점을 잃었다. 완벽한 계약을 위해 월스트리트의 회계사와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들은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내 모습에 실망했고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경험을 통해 계약 자체보다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고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인생 최고의 협상은 무엇인가.

“지금 열 살이 된 내 아들과의 협상이다. 그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내 아들은 ‘스쿠비 두’라는 만화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과 ‘스쿠비 두’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거래했다. 아들은 좋아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기꺼이 같은 시간만큼 피아노를 연습했다. 지금은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이 됐다.”

▶아이를 교육하는 데도 협상기술을 쓰다니 놀랍다.

“사실 아이들과의 협상은 가치가 다른 무형의 대상들을 거래하는 법을 훈련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는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나의 한 제자는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 사이에서 합작사 설립을 중개하는 일을 했다. 문제는 두 회사 모두 51%의 지분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 깊은 질문을 통해 일본 회사가 자사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면 49%의 지분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알아냈다. 지배지분과 고용유지는 가치가 다른 대상이지만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거래가 가능했다. 협상 테이블에는 최대한 많은 것을 올려놓는 것이 좋다. 거래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머릿속을 폭 넓게 파악한 후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면 양쪽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21세기 최악의 협상으로 작년 여름 워싱턴의 부채한도 증액 협상을 꼽았다. 그들은 왜 협상에 실패했나.

“(선명성 높은) 선거 카피를 놓고 경쟁하느라 미국 경제 안정이라는 협상의 목표를 까먹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 핵심 전략 첫 번째는 ‘목표에 집중하라’이다) 그들은 부채 한도가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이 없고 TV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협상 당사자들이 갈등보다 협력에 치중하면 파이가 4배로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서로 싸우면 시간만 낭비할 뿐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없다. 한국과 같이 협력하는 문화가 있는 곳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정치인들이 협상에 실패하는 이유는 선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공격해야 선거에서 이긴다고 생각한다. 유권자들이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갈등보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그랬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그랬다. 책에도 썼듯이 프레이밍(framing·틀 짓기)을 잘 활용하면 선거를 포함한 어떤 협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한 ‘변화’라는 프레임이 좋은 예이다.”

▶정치에서 프레이밍은 여론 조작에 쓰인다. 그리고 종종 효과를 발휘한다.

“얼마나 오래 효과를 발휘하느냐가 문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대량학살무기라는) 프레임을 활용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수만명의 미군이 죽었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거짓말쟁이라는 평판은 한번 받으면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는 북한인 것 같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문화적 이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남한은 많이 서구화되었지만 문화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약속은 계약서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기초한다. 계약서는 구속력 없는 종이쪽지일 뿐이다. 미국은 북한과 각종 협약에 서명했지만 그들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계약이 지켜진 적이 없다. 내 조언은 음식, 예술 등 작은 것부터 관계 정립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협상을 사람에서 시작해야지 정치로 시작하면 성공할 수 없다.”

▶협상에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앙심 깊은 유대인 7명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을 5개로 나눠 평균을 냈는데 ‘유대인’이라는 대답은 3위에 불과했다. 그들은 유대인이기 이전에 아빠나 엄마, 혹은 특정 직업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꼽았다. 인종차이에 대한 편견보다는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게 협상에 효과적이다.”

▶전 세계 청년들이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상전문가로서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내 협상 원칙 중 하나인 ‘역할 전환’을 활용해야 한다. 자신보다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1년에 수백 통의 입사 희망 이메일을 받는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데 치중한다. 나와 우리 회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한두 명에 불과하다. 회사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야 구직에 성공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퓰리처상 받은 前 NYT 기자…협상강의 13년째 수강신청 1위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이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에 대한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협상 연구 프로그램인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때부터 협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기자로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설득하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졸업 후 월스트리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과정에서 협상에 뭔가 중요한 것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문화와 감정이다. 이를 이론으로 정립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학교가 그에게 협상 강의를 맡기면서 세계적 협상 전문가가 됐다. 그의 강의는 경매방식으로 이뤄지는 와튼스쿨 수강신청에서 13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필라델피아=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