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돈을 찾으러 왔는데 누구는 찾아가고 누구는 떼이게 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진 6일 서울 을지로 한국저축은행 본점에서 만난 이 저축은행 예금주 김모씨(50대·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4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저축은행을 찾았다. 그는 “다음달 말 딸아이 결혼식 때문에 든 적금 만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영업정지를 당하면 필요한 날짜에 돈을 못 찾게 될까봐 지난 금요일에 왔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당일 돈을 찾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통천 한국저축은행 사장(사진)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이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께 영업장으로 나와 고객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지금 예금을 찾으면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며 고객들을 밖으로 떠밀다시피 했다.

김씨는 이 사장의 말이 미심쩍어 번호표를 요구했다. 이 사장은 이번에 번호표 발급기가 고장났다며 4일 번호표는 지급할 수 없다고 나섰다. 한국저축은행은 대신 5월7일 날짜가 찍힌 번호표를 나눠줬다. 이날 한국저축은행을 찾은 예금주들 가운데 5월4일 번호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예금을 인출할 수 있었지만 5월7일 번호표를 손에 쥔 사람은 피해를 보게 됐다. 김씨처럼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은 500여명에 이른다. 또 다른 피해자인 박모씨는 “번호표 발급기가 고장났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이 사장이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저축은행은 이틀 만인 6일 새벽 영업정지를 당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부채가 자산보다 460억원이나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으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36%였다. 자본 675억원에 BIS 비율 5.12%라고 공시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한국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 1530명과 후순위채 투자자 2757명은 고스란히 피해를 당하게 됐다.

이 사장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이 사장은 6일 새벽 출근해 예금보험공사에서 나온 관리인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고 돌아갔다. 분명히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4일 고객들에게 거짓말로 일관했던 이 사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왜 그렇게 단호하게 고객들을 보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사장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그냥 전화를 끊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