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한일재단 공동 캠페인]중소기업 기술문제 이렇게 풀자 (3) "日 퇴직기술자 유치하고 특허 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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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설립된 동신유압에서 일하는 직원 130명의 근속 연수는 평균 15년. 25년이 넘는 노련한 기술자도 60명에 달한다. 연구·개발(R&D)을 맡은 기술연구소의 기술자 20명은 기술과 경험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 외국인 전문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에 살아남으려면 사출 성형기 내구성이나 품질 확보가 절실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늘어났고, 중소기업에 서 장기 근무하려는 고급 인력을 국내에서 찾긴 어려웠다. 동신유압의 기술자 사이에서 "일본 기술자와 '함 해보까'"라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이 회사는 올초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매일 2시간씩 일본어 강좌를 시작했다. 박열 동신유압 기술연구소 이사는 "통역 직원도 있지만 매번 그를 통해 질문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부담일 수 있어 강좌를 마련했다" 며 "'묻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더니 점심 때 구내 식당에서 일본 기술자와 대화하는 직원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신유압은 토시로 씨와 함께 1년간 유압식 사출 성형기 'E170'를 개발해 특허 출원을 마쳤다. 사출 성형기는 플라스틱 원료인 수지를 넣어 금형 안에 쏘면 플라스틱 제품이 만들어지는 기계다. 당초 이 회사는 기존에 사용하던 전동식 제품을 개선할 방안을 찾고 있었다. 동력을 전달하는 '토글'이 기계 밖으로 돌출된 탓에 불필요한 공간을 차지하고 작동도 매끄럽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
토시로 씨는 실린더를 기계 내부에 장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기본 디자인과 설계는 물론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시제품 제작 이후 기름이 새고, 내부 부품의 서로 조이는 힘이 부족한 점도 발견됐다. 이들은 기계를 뜯어 부품을 바꾸고 양산품 데이터를 분석해 원인을 찾기로 했다. 실린더의 직경을 크게 만들고 기름이 새는 것을 막는 '실링'을 바꿔 다시 가동해보는 실험도 했다. 두 달 정도가 걸렸다.
신제품 개발에는 토시로 씨의 기술 경력이 다양했던 덕이 컸다. 토시로 씨는 일본 스미토모중기계공업에서 18년간 플라스틱 사출성형 기술자로 일했다. 사출성형 1급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사출성형 공장인 '에프엠티'를 운영하기도 했다. 금형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험도 있고 JIS(일본공업규격) 제정위원도 역임했다.
토시로 씨는 "한국 중소기업은 강력한 '톱-다운' 지시 체제를 갖춰 사장이 현장에 밀착해 있다는 점이 경쟁력" 이라며 "중소기업은 수요에 대한 빠른 대응이 필수적인데 수직적 의사 결정과 현장 대응이 빠르다는 한국 기업의 특징은 합의제 중심의 일본과 비교했을 때 확실한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동신유압은 신제품과 토시로 씨의 기술 지도 이후 불량률이 이전에 비해 10% 이상 낮아졌다. 사후 서비스(AS) 발생 빈도도 크게 줄었다. 동신유압은 올 매출 목표를 전년보다 40억 원 늘어난 505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현대모비스도 동신유압의 신제품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김병구 대표는 "새로운 분야에 기술과 능력이 있는 전문가라면 적극 영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좀 더 투자하자"며 기뻐했다. 동신유압은 토시로 씨와 재계약했다.
박열 이사는 "토시로 씨를 통해 기존 제품과 개념 자체가 다른 사출 성형기인 'E170'을 개발했다" 며 "데이터에 입각한 교육을 해주니 기술 습득과 체계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60대의 노장인 토시로 씨는 동신유압의 4000개 고객사를 대상으로 AS도 직접 나선다. 그는 현장 상황을 살펴 보고 금형·기계·조건 등을 분석해 해결책까지 제시해 고객사의 만족도도 높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는 사출 성형기 부문 선진국인 일본의 고급 정보도 토시로 씨를 통해 지속적으로 얻고 있다. 토시로 씨가 일본에서 열리는 플라스틱 사출 전시회에 참석해 기술 동향을 수집하고 자국의 기술자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동신유압은 1985년에도 일본의 제강회사들과 기술 제휴를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술 발달이 급격하게 진행되자 일본 기업들은 서서히 제휴를 꺼리기 시작했다는 게 동신유압 측의 설명이다. 이경섭 동신유압 경영기획실 차장은 "일본 시장의 현재를 보면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 며 "일본 퇴직 기술자를 지속 관리한다면 중소기업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시로 씨는 "한국 중소기업의 사출 성형 분야 기술력은 100점 만점에 80점 정도로 세계적 수준에서 모자라는 편" 이라면서도 "기존 기술을 소화하고 빠르게 적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없던 기술을 획득하기까진 겪을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주로 할 것이냐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 중소기업도 기술자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 며 "중국이나 동남아 기업들이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기업 모두 자사 특징에 맞는 기술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제품 양산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한경닷컴 김동훈 기자 d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