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로 통화하며 시속 40㎞로 운전하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추기까지의 ‘정지거리’는 23.7m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0% 상태에서의 정지거리 24.3m와 비슷하다.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정지거리는 이보다 1~2배 정도 더 늘어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모의주행 실험 결과다.

DMB를 보면서 운전하면 어떻게 될까.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정지하려면 DMB를 보지 않을 때에 비해 1.47초가 더 걸린다. 시속 60㎞ 속도로 달린다면 정지거리가 24.5m나 길어진다는 뜻이다. 더 치명적인 건 안전운전의 기본인 전방주시율이 50.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DMB 없이 주행할 때의 전방주시율 76.5%보다 현저하게 낮다. 운전 중 DMB 단말기를 조작하면 위험은 더 커진다. 조작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6초나 되기 때문이다. 2010년 교통사고 사망 원인의 54.4%(2997명)가 ‘전방 주시 태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전 중 DMB 시청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경북 상주에서 구미로 가던 25t 화물트럭이 훈련 중이던 여자 사이클 선수단을 덮쳐 3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다. 운전기사는 “시속 70㎞ 정도로 달리면서 DMB를 보다가 쿵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고가 난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DMB에 정신이 팔려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았을 가능성을 경찰이 조사 중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운전 중 DMB를 보는 데 대해 우리는 너무 관대하다. 휴대전화 통화에는 벌점 15점에 범칙금 6만~7만원을 부과하고 있으나 그보다 위험이 큰 DMB 시청에는 벌점이나 범칙금조차 없다. 도로교통법에 DMB 시청 금지가 ‘훈시’로만 들어 있을 뿐이다. 작년에 벌칙조항을 넣으려 했지만 국민 정서상 강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단다. 반면 영국에서는 운전을 하며 DMB와 내비게이션을 작동하거나 주시만 해도 최고 1000파운드(약 184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호주는 정차 중이라도 운전자 자리에서 DMB 영상이 보이면 범칙금 225호주달러(약 26만5000원)를 부과한다. 일본도 10만원 정도의 범칙금을 매긴다.

우리나라에 DMB가 장착된 차량은 약 880만대로 추정된다. 연속극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는 운전자가 많은 모양이다. 아차 하는 순간 ‘달리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벌점과 범칙금을 물리도록 법조항을 고치고, 안전운전 캠페인도 벌여야 한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생명까지 위협하는 악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