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모처럼 의미 있는 보고서를 냈다. KDI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에 관한 해석’이란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만 잘되고 있어 양극화가 발생했다”는 명제가 잘못됐음을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입증했다. 지난 20년간 생산(성장성), 부가가치(수익성) 증가율 면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되레 높았다는 것이다. 다산다사(多産多死)인 중소기업의 집단적 성과가 높은 것은 활발한 진입의 결과이며, 내부적으로 강한 경쟁력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통념이 팽배한 것은 개별 중소기업에서 관찰된 현상을 중소기업 집단 전체로 투사하는 인식의 오류 탓이라고 KDI는 설명한다. KDI는 양극화 인식의 진원지로 임금 격차를 꼽았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방안도 결과적 형평을 관철하겠다는 정치논리가 아니라면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의 왜곡을 해소하는 방향에서 찾으라는 충고다. 중소기업이 시장에 직접 진출할 통로를 확보하고, 정규직 과(過)보호를 줄이되 비정규직 보호는 강화하라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성과가 우월할 것이란 단정 아래 도입한 각종 규제를 재검토해야 하며, 중소기업에 일률적으로 나눠주는 식의 지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이 KDI의 결론이다.

KDI의 이 같은 지적은 동반성장을 국정기조로 내건 MB정부의 기본전제부터 틀렸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상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대기업만 잘나간다”는 대중적 선입견에 갇혀 반시장적 대책을 남발해온 것이다. 동반성장위의 초대 정운찬 위원장이 내놓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니 초과이익공유제니 하는 것들이 왜 문제인지는 새삼 거론하기에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아마 대중 정서에 편승한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해소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해선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유장희 신임 동반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는 확실하고 알찬 콘텐츠가 나오기 전에 작명부터 하지 않았나”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정치색을 빼겠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청와대는 KDI 보고서를 꼭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