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여름 '전력대란' 걱정…하늘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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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전기료에 펑펑…전력예비율 벌써 급감
日은 지난해 전기절약 정부목표 초과 달성
日은 지난해 전기절약 정부목표 초과 달성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벌써부터 하절기 전력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력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경우 지난해 9·15 정전대란과 같은 전력 부족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국민 개개인의 절전 운동에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전기요금을 하루빨리 현실화해 왜곡된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생수로 빨래하는 격”
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서울의 낮 기온이 28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30일 최대 전력 수요는 5730만㎾로 전날 대비 14.4% 증가했다. 공급예비력은 631만㎾(예비율 11%)로 안정권인 500만㎾를 약간 웃도는 데 그쳤다. 이달 중순 이후 냉방 전력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경우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9·15 사태 이후 대국민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전기를 물처럼 평펑 쓰는 전력 낭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전력소비 증가율은 4.8%로 경제성장률(3.6%)을 넘어섰다. 지난 겨울철(12~2월) 최대 전력 수요도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반면 난방용 및 산업용으로 쓰이는 등유와 경유 소비는 각각 19%, 6.5% 감소했다. 주물공장 전기로, 비닐하우스 난방, 전기전열기 등에 석유나 가스 대신 값싼 전력을 이용하는 대체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수돗물을 놔두고 생수로 빨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일본, 절전 목표 초과 달성
한국과 달리 주변국들은 절약과 전기요금 현실화를 병행한 전력수급 정책을 쓰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여름(7~9월 초) 대기업과 일반 건물을 상대로 피크전력의 15%를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규제 대상이 아닌 일반 가정까지 절전 대열에 동참하면서 목표(15%)를 초과한 21%의 전력을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나친 절전으로 노인들의 열사병 사망이 속출하자 에어컨 사용을 독려하는 TV 방송을 내보냈을 정도다. 여기에 도쿄전력은 오는 7월부터 가정용 전기요금을 10%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일본의 산업용 및 주택용 전기요금은 한국에 비해 각각 2.6배, 2.8배 높다. 대만 역시 전력난 해소를 위해 이달 15일부터 산업용은 35%, 주택용은 16.9%씩 전기요금을 올리기로 했다.
○산업용 요금, 100(韓)-266(日)
정부는 작년 두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상했지만 전기 원가 보상률은 여전히 87.4%에 불과하다. 전기를 만드는 데 100원을 투입해 84원에 파는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폭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이에 따라 전력을 판매하는 한국전력의 지난 4년간 누적 적자는 8조원에 달한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부채로 하루에 내는 금융비용만 60억원에 달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파급이 덜한 산업 부문의 전기요금부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미국 117, 프랑스 183, 일본은 266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13.7% 인상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일본 26.2%, 미국 33.3%, 프랑스는 135%나 뛰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국가적인 전력위기 상황에도 전력 과소비가 만연한 게 사실”이라며 “원가 구조에 맞는 요금 체계로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