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 귀책사유 있으면 착수금 일부 돌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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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로펌·변호사 사무실 불공정 약관 시정
특별수권사항, 고객이 선택…변호사 성공보수 요건도 강화
특별수권사항, 고객이 선택…변호사 성공보수 요건도 강화
인천 중구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해 2월부터 재산 분배와 관련해 집안 사람들과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올해 1월 자신의 변호사가 사전 협의 없이 법원에 소송을 취하했다고 일방적으로 알려 왔다. 변호사는 항의하는 김씨에게 처음 만났을 때 작성한 약정서를 내밀었다. 약정서상 약관엔 △소의 취하 △상소의 제기 △대리인의 선임 등 소송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인 특별수권사항을 변호사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법무법인과 변호사 사무실 등을 대상으로 불공정거래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불공정 약관이 만연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공정위에 적발된 서울과 인천의 일부 변호사 및 법무법인은 △특별수권사항을 변호사에게 포괄 위임하고 △특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무조건 승소한 것으로 간주하며 △재판 관할법원을 변호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착수금 반환은 안 된다는 등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계약서에 적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 마포에서 활동하는 모 변호사는 계약서에 ‘어떠한 사유가 발생해도 착수금(고객이 변호사에게 주는 보수)에 대한 반환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해놨다. 이에 따라 고객이 처음 계약할 당시 들었던 설명과 다르게 상황이 진행되거나 변호사의 업무 성과 등에 불만이 있어도 착수금 반환을 요구할 수 없었다.
또 인천 서구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는 소송에서 이기지 못해도 승소로 간주할 수 있는 요건들을 약관에 적시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임의로 상소를 포기 또는 취하했을 때도 이를 변호사의 노력으로 인한 승소로 볼 수 있다고 간주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고객의 뜻과 관계없이 관할법원을 임의로 정하기도 했다. 통상 민사소송법상 소송을 진행할 때는 여러 지역의 법원이 연관돼 있다. 이에 따라 변호사와 고객은 법원 위치와 재판부의 성격 등을 고려해 관할법원을 결정해야 하는데 해당 변호사는 이에 대한 고객 의견을 묻지 않아도 되도록 약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이들 약관 조항을 시정하도록 지시했다. 우선 착수금 반환 불가 조항에 대해선 ‘변호사 사무처리의 정도 등을 고려해 착수금 중 일부를 (고객에게) 반환할 수 있다’고 고치게 했다. 이어 △소송의 취하 △상소 제기 △청구 포기 등 중요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특별수권사항’도 고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만큼 약관법상 무효라고 판단해 반드시 고객의 찬반 여부를 약관에 명시하도록 했다.
변호사의 성공 보수를 지급하는 요건에 대해선 △변호사가 이미 승소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으며 △고객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등으로 제한했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시정조치는 이전에 진행됐던 법률 사건의 약관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특별수권사항
민사소송법 90조에 따르면 반소(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된 새로운 소송)의 제기, 소의 취하, 소송탈퇴, 상소의 제기 또는 취하 등은 변호사가 고객으로부터 특별한 권한을 따로 받아야 한다. 소송 패소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사안들이므로 변호사에게 이에 대한 결정권한을 줄 때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특별수권사항’ 으로 불린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