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을 단속하던 공무원 4명이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부상을 당했다. 지난해 12월 해경소속 고(故) 이청호 경사가 중국 선원의 칼에 찔려 숨진 지 넉 달 만에 또다시 공무원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이 경사 순직 이후 강력한 외교적 대응, 총기 사용 등으로 단속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중국 어선 불법조업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대한민국 공권력이 유린당하는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30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30분께 전남 신안군 흑산도 북서방 50㎞ 떨어진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중국 선적 어획물운반선 절옥어운호(227t급)를 나포하는 과정에서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항해사 김정수 씨(44) 등 4명이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도끼와 낫 등에 맞아 중경상을 입었다. 인근 해역에서 순찰 중이던 목포해경 소속 경비함 3009함이 곧바로 출동, 1시간30분 추격 끝에 절옥어운호를 나포했다.

이번 사고는 자칫 사망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들은 해경과 비슷하게 EEZ 안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업무를 수행하지만 경찰 신분이 아니어서 진압장비와 보호장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해경은 권총과 최루탄을 소지할 수 있지만 어업감독 공무원들은 진압봉만 들고 중국 선원들과 맞서고 있다.

정부의 ‘중국 어선 불법조업근절 종합대책’에는 해경 이외에 어업관리단의 단속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됐지만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게 거의 없어 공무원의 인명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당시 어업지도선을 늘리고 진압장비와 인력도 확대하기로 했었다”며 “2015년까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는데 예산 문제 등으로 아직은 (추진 실적이)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눈치만 살피는 정부의 소극적이고 어설픈 ‘외교적 대응 우선주의’가 현장 단속 공무원들의 수난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속과 처벌을 중국 선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크게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시달려온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은 강력하게 단속을 펼치고 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의 해경은 지난달 말 자국 영해에서 불법조업하던 중국 어선에 발포해 중국 선원이 숨지기도 했다. 필리핀과 베트남도 불법 조업 어선 단속에 군함까지 동원, 기관총을 발사하는 등 강력하게 단속을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남북관계와 교역문제 등으로 인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측면이 적지 않다”며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합심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및 공권력 유린 행위에 강력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철/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