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취재수첩] 한인 정치력 일깨운 LA폭동 20년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홍열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흑인폭동 20년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미주한인회 총연합회는 “재미동포 사회가 민족적 자만에 빠져 타민족을 경시하는 풍조가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며 통렬한 자성을 촉구했다. 총연합회는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미국사회에 우리가 얻고 누린 것을 나누고 되돌려주는 아름다운 일들이 동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흑인, 히스패닉 사회와 연대를 돈독히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1992년 4월29일부터 엿새 동안 벌어진 LA 흑인폭동은 한인 교포들에게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일군 코리아타운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으니 땅을 칠 일이었다. 미국 법원은 당시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분노한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폭력과 방화, 약탈은 물론 살인을 저질렀다. 재산피해가 7억1700만달러에 달했다는 게 공식통계다.

    이 과정에서 흑인들은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인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피땀 흘려 마련한 교포들의 상점이 불타고, 털렸다. 한인총연합회가 낸 성명은 흑인을 비롯한 타인종과의 유대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자성이었다. 교포들이 미국사회에서 정치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은 더욱 뼈아팠다. 당시 LA 경찰은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만 방어선을 쳐 한인타운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들도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다.

    2008년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 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강석희 씨는 “당시 한인 상점들이 잿더미가 됐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미국 정계 진출을 결심한 배경을 밝혔다. 2009년 버지니아 주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마크 김 씨는 “경찰이 백인들만 보호하는 데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정치 입문 배경을 털어놨다.

    미국 정치권에서 풀뿌리 로비스트로 널리 알려진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 역시 LA폭동에서 큰 피해를 입은 교민들이 변변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 뒤 ‘한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단지 경제적인 성공만 의미하지 않는다. 교포들이 LA 흑인폭동의 교훈을 잊는다면 언제 다시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김홍열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파리에서 만나는 농업

      올해도 어김없이 프랑스 농업박람회가 열렸다. 장소는 에펠탑과 몽파르나스를 꼭짓점으로 남쪽 방향 정삼각형을 그려 만나는 곳, 파리 엑스포 전시관이다. 코엑스의 6배나 되는 면적에 전시 부스 1100개가 들어섰고 가축 3500마리가 전시장을 채웠다. 방문객은 60만 명 몰렸다. 프랑스의 ‘스키 방학’ 시기인 2월 말에 매년 개최해 가족 단위 방문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개막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왔다. 농림부 장관 출신 자크 시라크는 양과 소를 능숙하게 다뤄 농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파리에 있을 때 짬 나는 대로 박람회를 찾으려 했다. 농업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농업국가 프랑스의 자부심이 넘쳤고 도시민과 연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포스터에는 ‘당신이 와서 농업을 지지해 달라’는 문구와 함께 32개 소 품종 사진이 실렸다. 150년 전 가축 경진대회에서 출발해 전국 품평회로 자리 잡은 행사여서인지 각종 콩쿠르가 주를 이룬다. 물론 품질의 중심에는 테루아(terroir)가 있다. 올해는 농업과 농촌을 다룬 영화제, 도서전 등 예술 행사도 늘렸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3만원가량인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아이들 놀거리와 어른들 먹거리도 풍성하다.명품의 거리인 샹젤리제 역시 농업과 관련 있다. 루이비통은 오래전부터 와인 사업을 하고, 에르메스는 경주마 장식을 만들던 전통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샹젤리제는 17세기 전에는 습지와 밭이었다. 들판을 뜻하는 샹(champ)이 거리 이름에 남아 있다. 이를 상기하기 위해 청년 농부들이 개선문부터 콩코르드 광장까지를 풀밭이나 밀밭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들은 나무와 식물 화분, 농산물과 가축으로

    2. 2

      [시론] 저성장시대, 규제 설계기준 바꿔야

      최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박용진 전 의원, 이병태 KAIST 명예교수, 남궁범 에스원 고문이 위촉되면서 인선의 적절성과 정책 방향을 둘러싼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공적 기구 인사에는 정치적 균형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의 규제를 논의하고 있는가’이다.고성장 시대의 규제는 비교적 단순했다. 연 성장률이 8~10%에 이르고 글로벌 수요가 확대되던 1970~80년대, 규제는 속도를 늦추는 비용으로 인식됐다. 허가를 단축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곧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2000년대 성장률이 3%대로 낮아진 저성장 국면에서도 기본 프레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규제를 완화하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정책의 중심에 놓였다.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가 마주한 1~2%의 초저성장 시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글로벌 통상 질서를 흔들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은 공급망과 에너지 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는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상시화한 구조적 불확실성이다. 이제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시대의 규제는 단순히 줄이고 풀어야 할 족쇄가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생존 확률을 좌우하는 제도적 인프라다.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의 강도가 아니라 규제를 바라보는 기준의 전환, 바로 레짐 전환(regime shift)이다.레짐 전환은 질문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1980년대 초까지 인텔은 D램(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었다. 일본 기업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수익

    3. 3

      [천자칼럼] 모사드 파워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지도자가 여호수아다. 이 과정에서 첫 번째로 마주한 요새가 여리고 성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것은 정보전의 승리였다. 과거 모세가 정탐꾼 12명을 보냈다가 내부 여론이 분열된 실패를 거울삼아 여호수아는 2명만을 비밀리에 보내고, 수집한 정보도 자신에게 직보하도록 했다. 현지 협력자 기생 나합의 협조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여리고 주민들이 실제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귀중한 심리 정보를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6일 동안 매일 한 번씩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 일곱 번을 돈 뒤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와 백성들의 함성으로 무너뜨렸다.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보기관이라는 모사드를 보유한 이스라엘의 정보 DNA는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형성됐다. 모사드의 전설적인 작전 능력은 여러 차례 영화로도 제작됐다. 넷플릭스 6부작 미니 시리즈 ‘더 스파이’는 신분을 위장해 시리아 국방차관에까지 오른 모사드 최고 스파이 엘리 코헨의 스토리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범인 팔레스타인의 검은9월단 멤버 13명을 9년간 쫓아 보복 암살한 ‘신의 분노’ 작전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 홀로코스트 기획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체포·압송 작전을 그린 영화는 ‘오퍼레이션 피날레’다.모사드의 작전 수행 과정은 가공할 정도로 집요하고 치밀하다.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센 파크리자데는 20년간을 추적 관찰했다. 교차로 인근 트럭에 설치된 원격조종 기관총에서 오로지 그의 안면만을 겨냥해 총알이 발사됐고, 차 안에서 25㎝ 떨어져 있던 부인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