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잃느냐 버느냐의 양자택일만 존재하는 헤지펀드의 본질적 속성상 인간적인 부분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아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타이거펀드를 만든 줄리언 로버트슨이다. 그는 뉴요커가 아닌 전형적인 미국 남부 신사였다. 냉철한 통제력을 가진 ‘돈버는 기계’라기보다는 감정의 기복이 종종 나타나고 인맥 쌓기에 열성적이었다.

로버트슨이 증권업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57년 뉴욕의 투자은행인 키더피바디(kidder peabody)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면서부터다.

이후 한 직장에서 23년간 근무한 로버트슨은 48세가 되던 1980년 회사를 나와 타이거펀드를 설립했다. 치밀한 분석을 통해 보유할 종목과 공매도할 종목을 걸러내고 시장 리스크의 일부를 헤지했다.

그가 고객들에게 밝힌 운용철학은 다음과 같다. “나는 시장의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한 의견은 무시한다. 오직 주식 종목 선정에만 집중할 것이다. 펀드 성과는 오직 얼마나 좋은 종목을 선정했는가에 좌우될 것이다.”

타이거펀드는 1980년 5월 창립 이후 1998년 정점을 찍을 때까지 연평균 31.7%의 경이적인 수수료 공제 후 수익률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인 12.7%를 2.5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이는 계량분석과 같은 특별한 기법이나 조지 소로스의 철학적 통찰력이 없이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로버트슨은 “펀드매니저는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하고 기존에 투자한 종목의 수익률이 우수하더라도 더 좋은 종목으로 계속 교체해야 한다”며 “한 종목에 자기자본의 5% 이상을 베팅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고전적인 투자 원칙으로 되돌아가 시장을 뛰어넘는 수익률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헤지펀드 운용방식으론 일종의 역발상이다.

이 같은 투자이론은 타이거펀드를 거쳐간 펀드매니저들을 통해 전파돼 ‘타이거 클럽’ ‘타이거 시드(seed)’로 불리는 투자자 집단을 형성하게 됐다. 타이거 클럽은 타이거펀드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 퇴사해 만든 펀드를 지칭한다.

타이거시드는 2000년 타이거펀드를 청산한 뒤 로버트슨이 돈을 맡긴 펀드를 가리킨다. 전자의 수가 32개, 후자의 수가 38개다.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이들 70개 펀드의 운용자산은 1050억달러(115조원)에 이른다.

김지욱 < 삼성증권 이사 j.august.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