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미국 중부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미시시피강이 범람하자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더 많은 도시민을 살리기 위해 물길을 농지로 돌렸다. 대규모 인명피해와 정유산업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 소도시와 농경지를 희생시키는 이른바 ‘악마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는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지난 겨울 우리는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대규모 동시 정전상태인 ‘블랙아웃’ 공포에 휩싸였다. 경제학의 기본원리인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이 경우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요금을 올리면 대다수의 서민들이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어떠한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에 ‘정의’ 바람이 불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 넘게 팔렸다니 놀라운 일이다. 무겁고 딱딱한 철학적 주제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희미해져가는 ‘정의’에 대한 열망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30여년간 효율성과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았듯이 ‘과도한 탐욕’을 불러왔고, 그 탐욕은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지금 곳곳에선 자성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고, 그 자리에 ‘따뜻한 자본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사회가 소득과 소비, 교육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우리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정의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반목과 갈등만 더욱 키울 것이다.

물론 정의를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단순하고 쉬운 문제였다면 많은 철학자들이 20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정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는 분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의란 상대적 개념이고 상황에 따라, 그리고 시간과 장소,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정작 샌델 교수도 명확하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필자는 좀 쉽게 접근했으면 한다. 법이 문자화되기 전에도 사람들 사이엔 불문율이란 것이 존재했다. 그 불문율처럼 우리는 이미 무엇이 정의로운 생각이고, 정의로운 행동인지를 알고 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돕는 것, 생명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것,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정의라는 것을 안다. 나아가 모두가 더불어 함께 잘사는 사회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정의란 전혀 특별할 것도 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필자는 한마디로 ‘정의=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평범한 상식이 진정으로 통용되고 실천되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정의가 살아 숨쉬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조준희 < IBK기업은행장 jhc0618@ib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