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은 ‘부채의 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란 보고서에서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요즘 한국에서 주목되는 점은 부채디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채는 증가하는데 자산가격은 하락하는 현상을 부채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흔히 부채디플레이션은 과도한 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해 발생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장기 저성장이나 공황의 전조로 해석한다. 2008년 말 725조원이었던 가계부채는 2011년 말 913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08년 9월에 102.09였던 서울지역 아파트매매가격지수는 2012년 3월 98.61로 장기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2011년 6월=100 기준) 부채디플레이션이다.

가계는 자산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자산구입을 위해 차입한다. 그 결과 자산가격이 상승한다. 심할 경우에는 버블이 형성된다. 그러나 자산가격은 어느 정도 상승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다시 하락하기 시작한다. 버블붕괴의 시작이다. 이렇게 되면 갚아야 할 부채는 그대로인데 자산가격이 하락해 가계의 실질적인 부채부담이 증가한다. 자산가격이 담보가치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에는 추가담보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면 부채상환을 위해 자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산가격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자산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매수세는 자취를 감춰 매매가 어려워져 원리금상환이나 생계자금마련 등 현금흐름이 급한 가계의 추가차입이 증가한다. 따라서 자산디플레이션이 심해지면 파산하는 가계가 속출하게 된다. 한국은행 분석에서 가처분소득 대비 이자비용 비율로 계산한 이자상환비율이 2011년 말 2.83%로 가계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치 2.52%를 넘어섰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소비가 위축돼 경기가 침체하게 된다.

또한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의 순자산가치가 하락해 투자가 위축된다. 직접적으로는 건설부문 경기침체를 통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2008년, 2009년 건설업 성장률은 -2.7%와 -4.6%로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 결과 2007년 말 185만명이었던 건설업 취업자 수가 2011년에는 175만명으로 10만명 줄었다. 뿐만 아니라 자산가격 하락은 담보가치 하락과 부실여신 증가를 가져와 금융회사 건전성을 훼손시킨다. 금융회사 여신건전성 지표 중의 하나인 고정이하여신비율(부실여신비율)을 보면 은행이 2008년 말 1.14%였으나 2010년 9월 말에는 2.32%까지 상승했다. 다행히 2011년 말에는 1.36%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상호저축은행은 2008년 말 9.11%였으나 2011년 6월 말에는 19.42%까지 상승한 후 2011년 말에는 16.39%로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이런 금융회사 건전성 악화는 대출여력을 줄여 기업투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이처럼 부채디플레이션은 소비위축, 건설경기 침체, 부실여신증가, 투자위축을 통해 경기침체를 초래하고 지속되면 장기불황이나 공황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이 이론이나 역사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가계파산이 속출해 서민생계를 위협한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자산가격은 양면의 칼이다. 너무 올라도 서민부담을 가중시키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서민생계를 위협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 쪽만 보고 분양가 상한제 등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 가계부채는 증가하는데 자산가격은 하락하는 부채디플레이션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니 공급은 더욱 줄어들어 전셋값만 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간다. 정부 여당은 정치적 계산을 떠나 너무 늦기 전에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오정근 < 고려대 교수·경제학, 한국국제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