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멕시코 정부, 미국 유통회사까지 똘똘 뭉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미국 가전회사 월풀이 제기한 냉장고 반(反)덤핑 소송을 승리로 이끈 배수한 LG전자 재경부문 세무통상담당 상무(사진)는 비결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1989년 LG전자에 입사,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컬러TV 반덤핑 소송에도 참여한 국제무역 관련 전문가로 꼽힌다. 1996년에는 반덤핑소송의 노하우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사내에 배포하기도 했다.

월풀은 지난해 3월 삼성, LG 등의 하단냉동고형 냉장고에 대해 덤핑 상계관세를 부과해줄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과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이 대상이었다. 지난해 5월 국제무역위원회 위원 5명 모두 미국의 산업피해를 인정했고, 미 상무부는 작년 10월 예비판정에 이어 지난 3월 최종 판정에서도 덤핑을 인정하면서 삼성, LG전자의 패색이 짙어졌다.

그는 “시장에서 제품과 가격으로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이 2~3년간 회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준비한 것이 덤핑소송”이라며 “그만큼 이기기 쉽지 않지만 동시에 포기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덤핑 혐의 있음’으로 판정되면 한 번 과징금을 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덤핑관세와 함께 매년 재심을 받아야 해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는 ‘협력’을 승소 비결로 꼽았다. 먼저 사내 역량을 모았다. 미국 내 영업조직, 회계데이터 관리부서, 생산사업부, 한국마케팅, 법무팀 등을 아우르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임원, 사원 등 직급과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했다. 하루 종일 회의를 할 때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 유통업체와 협력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배 상무는 “유통업체 부사장이 직접 청문회에서 월풀의 의견이 잘못됐다고 증언했다”며 “월풀이 유통업체 사장에게 항의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부와의 협력도 중요했다. 한국 정부와 멕시코 정부 모두 적극적이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의 수입규제대책반이었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국 정부에 항의하고 편지도 보냈다. 청문회에는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 멕시코 대사관 직원들이 참석했다. 배 상무는 “타국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인 경우는 드물어 미국 정부가 당황한 눈치였다”고 설명했다.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배 상무는 “위원회는 숫자를 계산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에 피해가 ‘있다’ ‘없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위원들은 임기 9년으로 정부나 기업 등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덤핑 판정 관련 자료만 1만5000페이지, 상계관세와 산업피해 관련 자료까지 합치면 3만페이지가 넘는 서류를 제출했다. 태스크포스팀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 미국법인, 워싱턴 등을 누볐다.

지난 18일 끝난 반덤핑 소송에서 국제무역위원회 위원 5명 전원이 LG 편에 섰다. 위원 전원이 최종 판정에서 의견을 바꾼 것은 한국 기업의 무역소송 사상 처음이다. 월풀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탁기 덤핑 소송이 진행 중이다. 배 상무는 “이 역시 쉽진 않겠지만 냉장고처럼 정부 등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