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왜 2년 넘게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환자(재정위기국)마다 환경과 질병 원인이 달라 처방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과다한 복지지출(그리스)이나 대규모 인프라사업(이탈리아)이 재정 위기의 기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 부실이 심해진 나라(스페인 아일랜드 네덜란드)도 있다. 프랑스는 이웃국가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다가 위기에 휘말린 케이스다.

유럽연합(EU) 소속 2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다른 처방을 주장하면서 사태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위기의 불을 끌 치료비(위기대응기금)가 충분치 않다는 점도 근본 문제다.

○긴축일변도 처방, 잘못된 처방일까

지난 21일 체코 프라하에선 12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긴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리스 아테네와 스페인 마드리드도 여전히 시위대들이 툭하면 광장을 점거한다. 파업의 명분은 ‘긴축 반대’다. 연금 삭감과 임금 감소, 실업 증가 등 긴축의 부담을 국민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긴축정책이 유럽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기부양이 아닌 긴축정책은 자살로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긴축 처방은 독일이 주도했다. 1930년대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은 물가 상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그래서 긴축을 통해 독일경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독일의 성공 경험이 경제사정이 다른 나라에서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독일이라는 의사가 잘못된 처방(긴축정책)으로 이웃을 죽이고 있다”(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신민주당 대표)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때를 놓친 치료

“그리스를 정치적으로 지원한다.” 2010년 2월10일 그리스 문제가 국제 문제로 떠오른 뒤 열린 첫 EU 정상회의에서 나온 결정이다. 2009년 12월9일 피치가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뒤 석 달 가까이 금융시장이 요동쳤지만 EU는 관망만 할 뿐 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스를 지지한다”는 립서비스만 내놓았다.

실망한 시장은 그리스 국채 투매에 들어갔다. 같은 해 5월 그리스에 대한 1차 구제금융이 결정됐지만 지원 금액(1100억유로)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다. 시장 불안은 그리스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아일랜드, 포르투갈로 번졌다. 그때마다 EU의 미온적 대응→위기재발→제한적 개입→위기 확대 및 전염의 형태가 반복됐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키웠다.

○뿌리깊은 복지병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과도한 수준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며 재정 부담을 키웠다. 긴 휴가(바캉스)와 조기 은퇴, 넉넉한 연금,높은 실업수당, 필요 이상으로 잘 갖춰진 의료보험이 그것이다.

재정위기 직전인 2010년까지 그리스에서 사회보장비용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0%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평균(15.2%)을 웃돌았다. 복지의 대명사 노르웨이(16.2%)도 뛰어넘었다. 그리스의 연금 생활자는 인구의 23%(260만명)까지 늘었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리면서 재정 적자는 불어났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과 복지정책을 선심성으로 쏟아냈고 유권자들이 여기에 부응했다. 남유럽의 복지제도는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지만 한번 복지에 맛들인 국민들의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리더십 부재에 텅빈 지갑

유럽의 리더십 부재도 재정위기를 키운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다.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밑빠진 독에 물 부을 수 없다”며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올초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프랑스는 ‘제 코가 석자’다.

IMF 등에선 유럽의 재정위기 대응기금 규모를 1조유로 규모 이상으로 키우라고 주문하고 있다. EU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4400억유로)과 유로안정화기구(ESM·5000억유로)를 올 한 해 동안 한시적으로 병행 운용하는 차선책을 택했다. 유로존 전체가 공동 위기대응기금에 돈을 내놓을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