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등의 재정위기 우려가 재발하면서 유럽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스페인 국채 금리가 4개월 만에 연 6%대를 다시 넘어섰다. 단기 국채 발행에는 성공했지만 금리는 대폭 상승하며 불안감은 높아졌다. 증시도 올 들어 15.3%나 떨어지면서 재정위기 공포가 스페인을 중심으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2년간 1000억유로(149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국채시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추가 자금 이탈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유로화의 위상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자금 빠져나가는 유럽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글로벌 투자자들이 거액의 자금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채시장에서 빼가면서 스페인 구제금융과 유로존 위기 재발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유럽 금융권은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화된 지난 2년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국채 투자금이 1000억유로가량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블랙록이나 핌코 등 채권시장 큰손들은 유로존 국채 비중을 이미 크게 줄였다. 피터 샤프릭 RBC캐피털마켓 애널리스트는 “유럽 국채시장을 떠난 투자자들이 아마도 한 세대가량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 중앙은행 집계 결과, 스페인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2010년 말 44%에서 올해 1월 말 33%로 쪼그라들었다. 대신 스페인 금융권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610억유로어치 자국 국채를 떠안았다. 산탄데르은행(320억유로), BBVA(300억유로), 방키아(180억유로) 등 스페인 은행권이 시한폭탄(스페인 국채)을 대책없이 들고 있는 셈이다.

유로존 국채 기피 현상은 남유럽 전반으로 번졌다. 프랑스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2010년 말 71%에서 2011년 말 65%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국채의 외국인 비중은 52%에서 49%로 낮아졌다. 미국 중앙은행(Fed)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국채만 보유하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헤지펀드의 대부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유럽 채권을 매도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자살하고 있는 유럽 경제”

각국 중앙은행들도 외환보유액 중에서 자산가치가 떨어진 ‘유로화 표시 자산 줄이기’에 나섰다. 각국 중앙은행의 활동을 평가하는 전문지 센트럴뱅킹퍼블리케이션(CBP)은 “54개국 중앙은행 외환매니저 중 지난 1년간 실제로 유로화 표시 자산 비중을 줄인 비율이 29%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 보유 외환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분기 26.7%에서 지난 연말 25.0%로 떨어진 상태다.

여기에 글로벌 신용평가업체 무디스가 이르면 내달 초 유럽 16개국 114개 은행에 무더기 신용 강등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 대상 유럽 은행 고위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사의 신용등급이 최소 한 단계 이상 강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은 뚜렷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구제금융설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17일 스페인 정부는 1년과 1년6개월 만기 국채를 총 31억8000만유로어치 발행하는 데 성공했지만 발행금리는 크게 올랐다. 이날 입찰에서 1년물과 1년6개월물 금리는 2.623%와 3.11%로 직전 입찰일인 3월20일보다 각각 1.205%포인트, 1.399%포인트 높아졌다. 19일 예정된 장기 국채 입찰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유럽이 긴축 만 고집하면서 경제적 자살의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