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판세로 긴장의 도가니였던 19대 총선이 끝났다. 정권 심판과 막말 파문에 진영논리가 얽히고 설킨 복잡한 선거판이었다. 지역구별로 한 명씩 뽑는 소선거구제는 상대 후보로 누굴 만날지가 결정적이다. 마치 국가대표 수영선수 선발전에서 박태환을 만나는 것 같은 낭패도 생긴다.

동작을 선거구의 정몽준·이계안 대결은 관련 인터넷 블로그 제목으로 등장했듯이 ‘안타까워요’ 그 자체였다. 대학동창일 뿐만 아니라 첫 직장을 현대중공업에서 같이 시작했던 오랜 인연이 필살의 대결로 바뀐 것이다. 최고 수준의 실물경제 경험과 정치적 경륜을 겸비한 두 후보의 대결은 지역 유권자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을 가슴 졸이게 했다.

선거기간 내내 정몽준 후보 우세가 점쳐졌으나 투표 당일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는 0.7%포인트 차의 박빙세로 보도됐다. 생중계 TV화면에서 정몽준 캠프의 당황함과 이계안 캠프의 환호성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개표 초반에는 초접전 양상을 보였으나 결국 7000여 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많은 다른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부정확한 출구조사로 인한 해프닝이었지만 정몽준 당선자가 “월드컵 승부차기 같았다”고 털어 놓을 만큼 긴장된 순간이었다.

선거전의 치열함은 40년 지기가 맞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다. 이계안 후보는 뉴스시간 전후에 집중된 현대중공업 이미지 광고가 정 후보 홍보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정 후보와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광고중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정 후보 측에서도 이 후보가 현역 국회의원 시절 이건희 삼성 회장 증인불출석에 대한 고발의 건 표결에 기권한 사실을 감췄다며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고발했다.

선박건조가 주업인 현대중공업은 소비재나 서비스 기업과는 달리 구매고객에게 직접 소구하는 광고가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정주영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강조했으나 최근 유명 탤런트를 내세워 ‘좋은 회사’임을 부각시키는 주제로 바꿨다.

사실 현대중공업은 비용절감을 내세운 ‘짠물 경영’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몇 년 전 고려대 경영대 재학생 200여명을 인솔해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가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어서 교통편과 숙식을 사장에게 직접 부탁했다. 그러나 사장의 대답은 교통편을 마련해 울산까지 내려오면 하루 숙박과 식비를 부담하겠다는 것이었다. 다른 대기업의 경우 교통편 지원은 당연한 관례라 매우 당황스러웠다. 결국 울산으로 이동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다른 회사 공장 방문을 긴급히 추가해 그 회사로부터 전세버스를 지원받아 바쁜 일정의 ‘양다리 견학’으로 마감했다.

현대중공업은 사외이사 보수도 박하고 사장을 비롯한 임원의 급여도 짜다. 그러나 직원 급여는 최고 수준이다. 직원 중에는 사외이사 4인의 연간보수를 모두 합한 금액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도 많다. 이직률은 매우 낮아 평균 근속연수는 20년이나 되고 노사분규는 잊은 지 오래다. 임원은 내부승진 위주로 채워지고, 직원과 보수 차이는 별로 없지만 자부심과 애사심이 대단하다. 주주총회를 마친 후에는 노조위원장이 회사 경영진에 감사를 표시하고 노사협력으로 회사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직원 급여 이외에도 광고비 지출은 ‘짠물 경영’의 예외인 성역이다. 공익광고 수준의 이미지 광고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언론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예상보다 부진했고 특히 대기업이 많이 자리잡은 울산에서 새누리당에 완패했다. 대기업을 1% 특권세력으로 몰아붙인 이념적 무리수의 부작용이 노출된 것이다. 야당이 이념적 편식을 버리고 이계안 후보 같은 실물경제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 신뢰할 수 있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계안 후보는 선거 다음 날 성명을 내고 정몽준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현대중공업 관련 고발을 취하할 뜻을 밝혔다. 국회가 기업인을 심부름센터 직원 부르듯이 소환하는 사태와 관련된 표결에서의 기권을 문제 삼은 것이 당초부터 정몽준 후보의 진심일 리가 없다. 두 후보는 고발사태를 신속히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적 포지션 구상에 매진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