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보고 있노라면 다른 프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발견한다. 개콘 출연자들은 정치인이나 기업가뿐 아니라 타 방송국 드라마와 경쟁 프로그램도 거침없이 소재로 삼는다. ‘1박2일’에 고정 출연 중인 가수 성시경을 불러다가 ‘개콘만 짱’을 외치게 만들거나, 유명 가수가 ‘무한도전’을 언급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개콘 출연진과 연출자의 강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MBC·SBS 프로그램도 ‘소재’로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는 방송가 불문율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개콘에 자신감이 넘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콘은 1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전국노래자랑을 제외하면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높은 시청률과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대표 프로그램이다. 일전에 만난 한 관리자는 일요일에 개콘을 보지 않으면 월요일에 직원들과 대화가 어렵다고도 했다. 적절한 시점에 “고래~?” 정도는 해줘야 젊은 직원들로부터 왕따당하지 않는다면서.

개콘이 이처럼 전국적 인기를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구성원들의 협업, 공정하고 치열한 시장경제, 긴 안목의 기획력이라는 3요소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3요소는 기업이나 국가를 운영하는 원칙으로서도 모자람이 없다. 개콘 특유의 협업문화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예능 프로그램 출연진의 분위기가 자유분방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개콘 출연진은 강력한 기수 문화와 주5일 출근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도벽은 용서해도 하극상에는 용서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수간 위계가 엄격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그렇게 창의적일 수 있는 것은 주5일 출근제도를 통해 출연진이 협업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협업문화는 개콘이 경쟁 프로그램과 확실하게 차별점을 갖는 이유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누리는 최효종도 과거 ‘남보원’(남자인권보장위원회)의 막내로 박성호, 황현희와 협업하면서 선배들의 기본기를 배워 익혔다.

○방송 컷오프 땐 출연료 50%뿐

협업을 한다고 해서 경쟁이 없거나 평가가 느슨한 것은 아니다. 매주 아이디어 회의와 리허설에서 출연자들은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어 각 코너의 완성도를 높이지만, 동시에 출연 기회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녹화방송 당일 연출자는 각 코너에 대한 관객 반응을 보고 방송 또는 삭제 여부를 결정한다. 한 출연자의 말에 따르면 방송에 나가지 않은 코너의 출연자들은 자신의 출연료에서 50%만 받게 된다고 한다. 상당히 냉정한 방식이지만, 이렇게 엄격한 시장경제의 논리가 고객 수요를 충족시키는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선진 조직들이 그렇듯이 개콘도 모든 의사결정을 온전히 시장경제에만 맡기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인기 코너가 생명력을 다할 때까지 지지부진하게 지속되고, 결국 프로그램 전체가 생명력을 잃어 폐지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콘의 지금 감독은 프로그램을 맡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 코너였던 ‘봉숭아 학당’을 과감하게 폐지했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유지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출자는 이 결정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봉숭아 학당이 없어져야 새로운 코너가 태어날 수 있다”는 말로 일축했다. ‘인기가 시들기 전에 먼저 코너의 목을 친다’는 원칙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남보원’을 죽이니 ‘애정남’ 탄생

기업이나 국가 운영도 같은 원리로 움직일 때 효과적이다. 성공적인 국가나 조직의 구성원들은 협업을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그들은 내부에서 협업하고 외부와 경쟁하는 시스템을 가진다. 역사가들은 거대제국 로마의 몰락 원인은 외침(外侵)이 아니라, 내부 분열이라고 했다. 협업보다 내부 경쟁이 심해질 때 어떤 조직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협업을 하면서도 구성원들은 각자 자기 이익을 위해 경쟁하게 마련이다. 국가나 조직은 공정한 경쟁 방식을 제공해 조직원들이 억울함을 느끼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시장경제가 개개인에게 피곤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남북한 경제를 비교해보면 자유시장경제와 중앙통제경제 중 어느 방식이 조직원들에게 더 큰 행복을 제공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종합적인 가치창출 관점에서 시장경제는 필연적인 선택이 된다.

우리가 신경을 쓸 것은 시장경제가 과열되거나 불공정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개콘이 지금의 협업, 경쟁, 기획의 3박자를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한동안 버금가는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기업과 국가의 리더들도 개콘을 보면서 장수 프로그램의 비결을 한수 배우기 권한다.

김용성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