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차명자금 일부를 임의로 빌려줬다가 회수가 어려워지고 차명자금이 드러날 위험이 발생하자 살인청부를 한 혐의(살인예비 등)로 기소된 전 그룹 비서실 재무팀장 이모씨(43)의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2일 이씨의 상고심에서 “살해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며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씨 등의 살해 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청부업자와 공모해 살인을 예비했다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또 이씨가 이 회장의 차명자금을 유용한 혐의에 대해서도 “본인이 재산상 이익을 얻고 이 회장에게 손해를 가하려 했다고 볼 만큼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씨의 공범 안모씨(45)도 무죄가 확정됐다.

이 회장의 차명자금을 관리하던 이씨는 사채업자 박모씨에게 월 2~3%의 이자를 받는 대가로 차명자금 중 170억원 등을 빌려 줬으나, 박씨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그동안 차명자금 세탁에도 관여해온 박씨가 차명자금을 폭로하겠다고 나서자 수억원을 주고 박씨에 대한 살인청부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이씨가 관리하던 이 회장의 차명자금 규모가 약 537억원이라는 그룹 관계자의 진술을 받아들였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차명재산 관련 세금만도 1700억원 이상 납부한 점에 비추어볼 때, 이씨가 담당했던 전체 차명재산은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판결문에서 언급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심은 살인예비 등의 혐의를 인정해 이씨에게 징역 6년, 안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이씨 등에게 살인 동기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에게 살인 청부를 받은 사람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검찰 공소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