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국회의원 선거의 날. 이번 19대 총선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이 있다. 태어난 일시와 직업, 사는 곳 모두 다르지만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이들의 감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목숨걸고 얻은 민주주의”라며 투표를 꼭 했다는 탈북자 주모씨(40·서울 양천구), “대학생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겠다”는 대학생 이석일 씨(20·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이목원 씨(19·한양대 정치외교학과)의 투표소 가는 길을 동행했다.

○“이렇게 소중한 민주주의”

서울 신정동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주씨는 지난해 10월 남편과 함께 탈북했다. 남쪽에 정착한 지 이제 6개월. 그런 그에게 자유 대한민국의 선거 분위기는 마냥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땐 무조건 ‘내려 먹이는’(군부에서 정해주는 대로)식으로 투표할 수밖에 없어 무조건 찬성 표만 던졌다”며 “민주주의 국가의 한 사람으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고 말했다.

주씨의 부모님과 시어머니는 아직도 북한에 있다. 그래서 올해 초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은 그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의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옮기게 한 또 하나의 요인이다. 주씨는 “탈북자들의 인권을 진심으로 생각해 줄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봤다”

대학생 이석일 씨는 투표 시작 시간인 오전 6시가 되자마자 경기 안양 부흥동 제7투표소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 열풍 이후 인하된 등록금을 보면서 대학생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투표장을 찾은 직접 동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씨는 첫 참여한 이번 선거에 실망감도 나타냈다. 그는 “물의를 일으킨 일부 젊은 후보나 ‘해적녀’ 비례후보와 같이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슈화 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정책 대결은 외면했던 후보들이 대부분”이라며 “공약을 보고 후보를 뽑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그나마 ‘덜 미운’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 향남읍 제6투표소에서 만난 이목원 씨는 각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씨는 “이번 학기 등록금 3%를 내리는 데도 그렇게 진통이 컸는데 반값 등록금은 실현 불가능한 공약인 것 같다”며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내세운 정당에 표를 줘야할지 의문”이라고 촌평했다.

○“한국 정치 참여 매우높아…놀랍다”

“결혼 이민자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투표하는 게 당연하죠.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찍고 오는 길입니다.”

정수림 씨(37)와 권은 씨(38)는 각각 몽골과 중국 출신 결혼 이민자다. 두 사람은 11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후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남양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정씨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첫 번째 투표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아침 일찍 아들의 손을 잡고 투표소에 나온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첫 번째 투표여서 기분이 설레였다”고 말했다.

인천서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권씨는 “중국에선 투표를 해봐야 변하는 것이 거의 없어 투표를 해 본 적이 없다”며 “한국에선 선거 결과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거일만 되면 긴장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의 정치 문화는 어떻게 비쳐질까. 정씨는 “몽골과 달리 한국에선 사람들 모두 정치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높아서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직장에서나 이웃을 만날 때마다 가장 많이 대화하는 주제가 바로 정치”라고 덧붙였다. 권씨도 “중국에선 정치인들이 무슨 행동과 말을 하든지 일반 사람들은 거의 관심이 없다”며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권이 다문화 가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이자스민 씨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정씨는 “이자스민 씨가 정치권에 들어가면 다문화 가족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씨도 “결혼 이민자 대상으로 금전적인 지원만이 아니라 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우섭/강경민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