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기업 명단이 올 연말 공개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가 그런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직장 여성의 육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취지다. 지난해 12월 영유아보육법에 ‘명단 공표’ 조항이 신설돼 복지부로서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각 사업장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보육 주무부처인 복지부조차 명단 공개에서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복지부 직원들의 숫자는 700명이 넘는다. 영유아보육법상 직장 어린이집 설치 대상(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 또는 상시 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이다.

그런데 복지부 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서울 계동의 현대자동차 빌딩에는 어린이집이 없다. 복지부는 2008년 3월 과천에서 계동으로 이사오면서 어린이집 부지를 따로 확보하지 못했다. 복지부 직원들은 과천정부청사와 세종로 중앙청사에 있는 어린이집을 함께 이용하고 있다. 복지부조차 ‘직장 내 설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원칙은 ‘직장 내 설치’가 맞다”면서도 “복지부 지침을 통해 직원들이 밀집한 거주지역이나 인근 지역에 직장 어린이집을 둘 수 있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근의 기준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복지부 계동 청사에서 세종로 중앙청사까지 걸어가면 20분 이상은 족히 걸린다. 이 정도를 ‘인근’으로 볼 것인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복지부에만 ‘고무줄 잣대’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복지부가 실제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는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문제는 보육 주무부처인 복지부조차 이 정도인데 일반 기업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대상 사업장 833곳(2010년 기준) 중 실제 설치한 곳은 37%에 불과하다. 32%가량은 보육비 지원 등 ‘직장 어린이집 설치에 준하는 조치’로 간신히 법 위반을 면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사업장들은 지금도 복지부에 “부지 확보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명단을 공개하면 이미지가 떨어질까봐 기업들이 어떻게든 어린이집을 만들 것이란 생각은 어찌보면 너무 순진하고 어찌보면 너무 위압적이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