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스위스가 탈세 방지를 위한 새로운 조세협정을 체결했다. ‘은행 비밀주의’를 무기로 미국과 유럽 부유층의 탈세자금을 유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스위스가 주요국 공세에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5일 “독일과 스위스 양국 재무장관이 스위스 베른에서 개정된 조세협정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협정으로 독일은 매년 100억유로(14조8000억원)가량을 스위스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협정이 발효되는 내년부터 스위스 정부는 독일 탈세자가 2000년 이후 스위스에 개설한 무기명 계좌에 대해 예금 규모와 거치 기간에 따라 향후 10년간 21~41%의 세율로 원천징수해 독일 정부에 지급한다. 이는 지난해 9월 양국 간 잠정 합의됐던 19~34% 세율 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다. 독일 측이 스위스 당국에 탈세 혐의자 조사를 요청해 자료를 받을 수 있는 횟수도 999회에서 1300회로 늘었다.

또 내년 1월부터 독일인이 개설하는 스위스 은행 무기명 계좌에 대해 이자소득의 26.4%를 세금으로 원천 징수해 독일 정부에 지급키로 했다. 이와 함께 스위스 주요 은행들이 협정 발효 이전에 얻은 이득 가운데 20억유로를 독일 정부에 1회성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앞서 독일과 스위스 정부는 지난해 9월 조세협정에 합의했지만 “조세협약에 탈세자들이 빠져나갈 허점이 많다”는 이유로 독일 상원이 부결시킨 뒤 재협상을 거듭했다.

다만 독일이 스위스로부터 상당한 추가양보를 얻으며 신조세협정을 마련했지만 독일 의회 비준을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사회민주당(SPD) 대표는 “2013년 1월 협약 발효 이전에 대규모 탈세자금이 스위스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방안이 없다”며 “스위스 정부와 은행에 그동안의 범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