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에 완연한 봄기운이 달아오르고 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올 1분기 8.1% 급등했다. 1998년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나스닥지수도 같은 기간 19% 상승률(1991년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자동차 판매도 증가하고 다가구 주택 착공이 늘었다.하지만 시장은 불안하다. 주가는 올랐지만 거래량이 적다. 기업들은 여전히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하지 않는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1분기 출발은 좋았었다. 한국경제신문은 월스트리트 전문가 5명을 만나 미국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1) 경제 전반

더블딥 가능성 20%로 줄어

◇베스 앤 보비노 S&P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경제의 회복이 시작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회복세는 여전히 약하다. 이를 ‘미국 경제가 저속 기어로 운행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주택 시장은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다가구 주택의 착공이 늘어나고 있는 건 좋은 신호다. 하지만 집값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최고점에 비해 33.8%나 하락했지만 봄 내내 집값이 계속 떨어질 전망이다. 주택 압류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소비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는 완만하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실업률과 소비는 정확하게 반비례해왔다. 높은 실업률은 소비자들을 두렵게 하는 요소다.

하지만 느리게나마 경제는 계속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유가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기름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71년 에너지 소비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8%에 달했지만 2008년에는 42%까지 줄었다. 대체에너지가 늘어나면서다. 지난해 많이 언급됐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 유럽 부채위기의 전이, 미국의 급격한 재정긴축, 금융시장 위축, 중동사태로 인한 유가 급등이 동시에 겹치면 더블 딥이 일어날 수 있다. S&P가 집계하는 더블딥 가능성은 2월 25%에서 지난달 20%로 낮아졌다.


(2) 금융업계 상황

유동성 풍부…금융주 랠리


◇프레더릭 캐논 KBW 리서치 헤드

금융주는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15%를 차지한다. 20.5%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주에 이어 두 번째다. 올 들어 금융주는 상당한 랠리를 이어왔다. 하지만 작년, 재작년 1분기에도 금융주는 상승했다가 여름부터 크게 하락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다를 것인가? 그렇다. 올해가 작년, 재작년과 다른 점은 대출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대출 증가율(5%)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3%)을 넘어섰다. 더 이상 차입축소(디레버리징)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가 1분기에도 계속됐다면 랠리가 지속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은행의 자본금 규모가 7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규제당국이 자본금 확충을 주문해온 데다 금융위기 이후 배당을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를 통과한 은행들이 배당에 나서면서 투자심리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시중에 유동성이 많다는 점이다. 미국중앙은행(Fed)의 초과지급준비금이 1조6000억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금융시스템 내에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만약 유럽위기가 전이된다고 하더라도 완충장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문제점도 많다. 미국 은행들은 아직도 금융위기의 유산인 부동산 대출 자산 물량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규제강화로 투자은행들은 성장에 제한을 받을 것이다.


(3) 3차 양적완화 시점

대선 직전보다 상반기 예상


◇빈센트 라인하르트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

금융위기 이후 긴 경기침체를 겪은 미국은 이제 겨우 확장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미지근한(tepid) 확장기다. 그 이유는 부가 창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우리는 21개월 소득에 해당하는 부를 잃었다. 지금은 아주 약간 회복된 정도다. 왜냐하면 세상은 더 리스크가 큰 공간이 됐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진행되고 있고 에너지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12월에는 선거가 있다. 선거 전까지 미국 정부는 재정정책을 활용할 수 없다. 기업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상·하원을 장악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초 법인세율이 몇 %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 최근에 약간 경기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씨 때문이었다.

Fed는 성장률을 올리고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두 가지 의무를 가지고 있다. Fed는 올해 미국 GDP가 2.2~2.3%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업률은 8.2~8.3%로 예상하고 있다.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는 전망치다. 이런 상황에서 Fed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뿐이다. Fed는 동시에 정치적 압력도 받고 있기 때문에 선거 직전인 하반기보다는 상반기 내에 3차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4) 투자 전략

조울증 앓는 시장…변동성 대비를

◇피터 피셔 블랙록자산운용 채권 헤드

투자자들이 투자결정에 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세 가지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전환은 경제성장 엔진의 변화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은 가계대출을 통한 소비가 이끌어왔다. 금융위기 이후 이 엔진이 꺼졌다.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엔진은 투자다. 중국 GDP의 47%를 투자가 담당하고 있다. 이 엔진도 꺼져가고 있다.

중국이 투자만 가지고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매년 새로운 것을 두 배씩 지어야 한다. 불가능하다. 이 같은 전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투자자들에게 큰 불확실성이다.

두 번째 전환은 금융산업 축소다. 금융위기 이전에 과도하게 비대해졌던 금융산업이 위축되면서 자본시장에 유동성이 줄어들고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또한 투자자들에게는 엄청난 불확실성이다. 세 번째는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다.

과거에는 중앙은행의 가장 큰 역할이 금리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대차대조표 확대를 통한 통화량 관리로 바뀌었다. 이들이 언제, 얼마만큼의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거대한 불확실성이 됐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약간의 조울증을 앓고 있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시장의 구원자인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정신병자인지 시장도 혼란스럽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주식이나 채권에 크게 베팅하기보다는 변동성에 투자하는 등 전술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5) M&A 시장은

적대적 인수합병 늘어날 듯

◇스테판 셀릭 BoA메릴린치 수석부회장

올 초 월스트리트는 기업 인수·합병(M&A)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왜냐하면 첫째 경제가 천천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에 목마른 기업들은 보통 M&A에 나선다. 둘째로 미국 기업들은 3조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깔고 앉아 있다. 셋째 주가 하락으로 가격이 싸졌고 넷째로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자금 조달이 쉬워졌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1분기에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작년 1분기에 비해 미국 내 M&A 규모는 33%나 줄어들었다. 세계적으로 약 25% 감소했다. 기업들이 여전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과거 M&A 활동의 25%를 차지하던 사모펀드(PEF) 딜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들 갖고 있는 이른바 ‘드라이파우더’가 4250억달러에 달한다. 선호하는 대규모 딜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가가 너무 낮은 것도 오히려 걸림돌이다. 현금이 아닌 주식을 주고 M&A를 하려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팔려는 측에서는 주가가 낮아 원하는 값을 받을 수 없다. 사는 쪽 ,파는 쪽 모두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적대적 M&A가 늘어나고 있다. 받고 싶은 가격과 지불하고 싶은 가격이 맞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다. 주가가 더 오르면 전체적인 M&A 활동도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 드라이파우더

dry powder. 사모펀드, 부동산펀드 등 투자회사들이 투자환경이 개선될 때를 대비해 내부에 쌓아놓는 예비금을 말한다. 개인들의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을 일컫기도 한다. 과거 화약을 사용해 전쟁을 치렀을 당시 지휘관들이 전투에 대비해 충분한 양의 마른 화약을 준비해 놓아야 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