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백화점이 교통혼잡 분담금 내듯 網 사용료도 사업자가 부담해야
최근 스마트폰, 스마트패드류의 확산으로 시작된 데이터 폭증과 인터넷시장 포화, 신규 서비스 출현은 급변하는 통신시장에서 망 중립성 논의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작년 5월부터 방송통신위원회 주도로 시작된 망 중립성 포럼은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고, 올해 2월부터 학계, 연구기관, 사업자 등이 포함된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정책자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통위는 향후 트래픽 관리 세부 기준과 모바일 인터넷전화, 스마트TV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한 정책방향 등 망 중립성 세부 정책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초기 망 중립성 논의는 인터넷망 사업자가 콘텐츠 내용에 따라 다른 요금을 부과하거나 회선 속도 및 서비스에 차별을 둠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됐다. 망 사업자에 의해 인터넷의 자유와 활발한 아이디어 전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보장으로부터 시작된 망 중립성 논의가 오히려 이용자 권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변질돼 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특히 미국의 망 중립성 논의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최종 소비자에게 비용 전가를 허용하는 구조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의 ‘망 중립성 조치’로 인해 AT&T 버라이즌 등 통신사업자가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콘텐츠·플랫폼 사업자에 직접 과금할 수 없게 되자 최종 소비자에 대한 큰 폭의 요금 인상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망 중립성 논의가 콘텐츠·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과금할 수 없다는 논리로 변질됐고, 미국 인터넷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돼 있지 않고, 미국의 인터넷 시장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살펴보면 현 시점에서는 망 사업자가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의 지배력 남용, 개인정보 침해 및 콘텐츠·단말과의 수직결합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개연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변질된 망 중립성 논의는 이러한 중대한 변화를 간과하고 있다.

망 중립성에 대한 관점은 각국의 시장경쟁 구도에 따라 상이하다. 미국은 망 중립성 조치가 시행되고 있으나, 이것은 자국 인터넷 시장의 경쟁 비활성화 및 규제 미비 환경을 대변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경쟁상황과 관련해 이용자의 사업자 선택이 1~2개 정도만 가능한 복점 시장임을 밝히고 있다. 반면 영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유럽연합(EU) 국가는 시장기능을 통해 망 중립성 이슈를 검토하고 있는데, 투명성을 전제로 자율적인 망 관리의 폭을 넓히고 있다. 또 설비제공의무, 인터넷 상호접속 등 미국에는 없는 기존 도매규제가 있어 추가적인 망 중립성 규제 도입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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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달리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경쟁이 활성화된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설비기반 경쟁 정책은 국제적으로 벤치마킹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방통위는 다수의 경쟁사업자가 존재하는 점을 고려해 2009년 말부터 KT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이용약관 인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한국의 경쟁상황은 미국보다는 EU와 유사하므로 규제환경도 EU와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돼야 한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의 인터넷 시장은 경쟁이 활성화돼 있으며,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사업자인 인터넷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

정부는 인터넷을 2004년부터 기간통신역무로 편입해 요금 및 상호접속규제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방통위를 통해 통신산업을 규제해 왔다. 그에 반해 미국 통신법은 인터넷접속서비스를 ‘통신서비스’가 아닌 ‘정보서비스’로 분류해 통신사업자에 대한 규제 권한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현행 법 체계상 규제 수단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망 중립성과 같은 추가적인 규제 도입으로 인해 방송통신시장의 활성화가 저해될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영국 등 EU의 사례와 같이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을 신뢰하고 시장경쟁에 따른 순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는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 KT의 아이폰 도입으로 통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던 위피(WIPI) 규제가 철폐됐고, 그 이후 국내 스마트기기 산업은 경이적인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아이폰의 사례에서 보듯 경쟁이 활성화된 시장에서는 시장의 순기능이 살아나고 이를 통해 ICT산업의 선순환을 통한 국가 산업 경쟁력이 발전하게 된다.

변질된 망 중립성 논의에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트래픽 폭증에 따른 망 투자 비용 분담이다. 망 투자 비용 분담과 관련, 미국 네덜란드의 경우 망 비용의 공평한 분담에 대한 고려 없이 망 중립성 규제가 시행된 결과 유무선 이용자의 요금이 크게 인상됐다. 이에 반해 일본 총무성은 망 중립성 원칙의 내용으로 망 비용의 공평한 부담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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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비용의 공평한 부담이 필요한 이유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 때문이다. 월정액제 인터넷 요금제에서는 누구나 최소의 비용으로 네트워크에 접속이 가능하다. 따라서 망 비용 분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을 경우 최적 사용량보다 더 많은 양이 사용돼 점차 자원이 고갈되는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 이용자의 통신비만을 인상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은 방법이다. 공평한 비용 분담에 관해 준수해야 할 원칙은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르면 일반 이용자만이 아니라 망 생태계 관련자 모두에게 망 비용을 공평하게 부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망 중립성 논의는 일반 이용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망 기반 수익자 및 트래픽 유발자에 대해 추가적인 망 이용 대가를 징수할 수 있는 체계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교통혼잡의 원인이 되는 시설물(백화점 등)의 소유자에게 교통유발 분담금을 통해 사회적 경비를 일부 분담시킨 것과 같이, 네트워크 혼잡의 원인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향유하는 사업자에게 망 투자금액을 분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맞짱 토론] 백화점이 교통혼잡 분담금 내듯 網 사용료도 사업자가 부담해야
문기탁 < 성신여대 교수 >

△서울대 법학과 △사법연수원 29기 △변호사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보호국 자문위원 △성신여대 학생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