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에 있는 아르셀로미탈의 2010년 철강 생산량은 9820만t이었다. 세계 1위다. 2위인 중국 바오스틸의 약 3배다. 미탈은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를 이끄는 ‘철강왕’ 락시미 미탈은 1976년 창업 이후 쇠를 녹이는 고로를 하나도 직접 만들지 않고 회사를 키웠다. 계속된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1989년 이후 미탈이 인수한 기업은 20개가 넘는다. 이 기간 매출이 290배가량 증가, 2011년엔 약 940억달러에 달했다. 아르셀로미탈의 공장은 전 세계 60개국에 있고, 직원 수는 32만명에 이른다. 미탈은 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 21위에 올랐다. 보유자산만 207억달러다.


○도전정신과 승부근성이 M&A로

미탈은 1950년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미탈의 아버지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락시미는 힌두교의 부(富)의 여신을 뜻한다. 그의 고향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미탈은 “어린 시절 장판도 없는 콘크리트 방에서 밧줄로 엮은 침대를 놓고 잠을 잤다”고 술회했다.

영국계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한 푼 한 푼 돈을 모았다. 그리고 대도시 콜카타로 이주한 뒤 소형 철강업체를 인수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미탈은 회계학과 수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졸업 후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976년 돌연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인도는 규제가 심해 사업을 하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인도네시아로 간 미탈은 이스팟인도라는 철강업체를 세웠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사정도 인도와 비슷했다. 많은 규제와 일본 철강기업의 시장 선점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가격경쟁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철광석, 석회석 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용광로 대신 신형 전기로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생산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일본 기업을 한발한발 따라잡기 시작했다. 생산량을 연간 3만t에서 몇 년 만에 33만t까지 늘렸다. 이것으로 만족할 그가 아니었다.

미탈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해외 제철소 인수에 나섰다. 1989년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토바고 정부로부터 국영 제철소인 이스콧을 인수했다. 이스콧은 하루 1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던 부실한 회사였다. 미국과 독일의 유명 컨설턴트와 전문가들도 회생 가망성이 없다며 포기했던 기업이었다. 미탈은 그러나 인수 후 1년 만에 매출을 두 배로 늘리고 흑자회사로 바꿔놨다.

1992년에는 멕시코 정부가 20억달러를 투자해 만든 시카스타 공장을 투자금의 10분의 1 수준인 2억2000만달러에 사들여 흑자기업으로 돌려놨다. 아일랜드에서는 수백만달러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동전 몇 푼에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1995년 카자흐스탄 카르멧의 부실 철강회사를 사들였다. 많은 사람들은 미탈의 카자흐스탄 기업 인수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카자흐스탄 시장이 아닌 인접한 중국 시장을 노렸다.

공장을 인수한 뒤부터 중국의 경제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철강 수요가 급증했다. 이 회사는 미탈이 인수한 지 1년 만에 9000만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카자흐스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9%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UBS투자자문의 철강분야 애널리스트 피터 힉슨은 “미탈은 모든 사람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회사를 사들여 그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천부적”이라며 “특히 인수 시점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미탈이 세계 1위의 제철회사 꿈을 이룬 것은 2004년. 미국 최대의 철강 기업 인터내셔널스틸그룹(ISG)을 인수, 아르셀로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2위 아르셀로까지 집어삼켰다. 인수에 걸린 기간은 단 5개월이었다.

미탈 최고경영자(CEO)가 M&A에 집중하는 이유는 수익성 때문이다. 그는 “부실 기업 인수의 가장 큰 장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라며 “인력 감축과 생산 효율화 등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화(turn around)에 성공하면 기업 가치는 엄청나게 높아진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제철소를 인수하면 국제기구의 차관 등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치밀한 전략 외에 그의 도전정신도 M&A에 나서게 하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미탈은 “낯선 나라와 낯선 기업을 상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도전해 성취하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과감함과 치밀함의 공존

미탈의 M&A 전략은 ‘치밀한 검토’와 ‘과감한 실행’이다. 그는 자본난에 허덕이는 옛 공산국가나 제3세계 국영 철강회사들을 목표로 삼았다. 이 회사를 싼값에 사들인 뒤 직원을 해고했다. 공장에는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 900만달러를 주고 사들인 체코의 노바 허트다.

그는 연 360만t 생산 규모의 이 공장을 매입한 뒤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1만1000명을 해고했다. 이후 미국에서 업계 최고의 기술팀을 불러들여 단 1년 만에 첨단 공장으로 개조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노바 허트는 그해 2분기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는 고대 인도의 재무관리 방식인 ‘파르타(Partha)’를 경영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일 저녁 일과 후 관리자들과 함께 미리 정해진 원가 및 매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회의를 갖고, 효율성 극대화방안을 논의한다. 모든 구매는 유럽 본사가 취합해 한꺼번에 대량 주문을 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재료 구입 비용을 낮추는 방법이다.

M&A에서도 철저한 계산을 통해 최저가격을 찾아낸다. 아르셀로미탈이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들인 평균 비용은 t당 300달러 정도다. 업계 평균 t당 1000달러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철강회사 M&A에서 가격은 공장의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미탈은 제철소 턴어라운드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지만 인수 후 2년 안에 생산성 개선이 이뤄지지 않거나 노조가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하면 과감하게 공장문을 닫기도 한다. 아일랜드 제철소 인수 후 구조조정을 놓고 분규가 거세지자 공장을 폐업해버렸다.

M&A에는 본인이 직접 나선다. 아르셀로미탈에는 M&A를 전담하는 별도의 팀이 있다. 미탈을 비롯해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3인이 직접 이 팀을 담당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투자 안목과 함께 미탈의 경영능력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강인한 체력, 철저한 이윤중심 경영,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혜안이다. 미탈의 연간 평균 비행 거리는 약 57만㎞에 달한다. 60여개국 공장을 다니며 직접 현안을 챙긴다. 또 매일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며 경영방침을 결정하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이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