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융감독당국의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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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
한 신용카드회사의 임원은 요즘 연이어 출시되는 ‘알뜰 주유소’ 주유 할인카드를 놓고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룰을 어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2007년 카드업계의 과당경쟁을 막겠다며 주유 할인카드의 경우 ‘할인은 ℓ당 60원, 포인트 적립은 80원’으로 부가 서비스를 제한해왔다.
하지만 지식경제부 주도로 도입된 알뜰 주유소 카드는 이런 룰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내놓은 알뜰 주유소 카드는 ℓ당 최대 120원 할인, 150원 포인트 적립을 해 준다. 농협은 ℓ당 200원 적립되는 카드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우체국에서는 신용카드가 아닌 체크카드인데도 ℓ당 최대 100원을 깎아준다. 가맹점 수수료율도 낮고 할부나 현금서비스로 돈을 벌 수 없는 체크카드에 이 정도 혜택을 주는 것은 무리라는 게 카드업계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 주유소만 중요하고, 카드사 과당경쟁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정부의 ‘이중잣대’ 적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초 금융회사들에 대해 “과도한 배당을 자제하고 내부 유보금을 충분히 쌓아둘 것”을 요구했다. 경기가 악화할 것에 대비해 충분한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에서였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회사들은 감독당국의 지침을 따랐다. 배당성향(당기 순이익 대비 총 현금배당액 비율)을 2.66%포인트에서 많게는 35.1%포인트까지 낮췄다.
정작 정부 권고를 무시한 것은 정부 자신이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올해 배당성향은 각각 24.1%와 23%로 전년보다 오히려 약 4%포인트씩 상승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1300억원 상당이다. 국책은행은 위기가 닥쳐도 세금으로 도와주면 되니 고배당을 해도 괜찮다는 안이함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 같은 정부의 이중잣대는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동일한 운동장(시장)에서 심판이 서로 다른 룰을 적용하면 선수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