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인트] 건강한 자본시장, 참여자의 몫
매년 3월 말이면 증권시장은 상장폐지 등 부실기업 퇴출로 홍역을 치른다. 감독당국도 부실심사로 망해가는 기업의 유상증자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심사가 너무 까다로워 회생을 도모하는 기업의 자금조달에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상충되는 비판이지만, 감독당국이 투자해서는 안 될 기업과 투자해도 되는 기업을 확실히 가려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사실 이는 ‘자기책임 투자’나 ‘고위험·고수익’이라는 자본시장 원칙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 감독당국에서 기업의 실질내용을 일일이 심사해 허가한다면 자금조달이 장기간 지연되고 시장이 아닌 감독당국의 결정으로 자원배분이 결정됨으로써 시장기능이 왜곡되는 등 현실성도 없다.

그래서 자본시장 선진국들은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판단에 관련된 중요정보를 충실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공평하게 알리도록 하는 ‘공시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증권시장에 널리 알림으로써 투자자가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감독당국이 홀로 해낼 수 없으며 시장참여자 모두가 제 역할을 다할 때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기업이다. 정보는 자신에게 좋든 불리하든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보여줘야 한다. 특히 왜 자금이 필요한지 어디에 사용할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기업의 기본책무다. 은행에서 단 몇 억원의 대출을 받더라도 자세한 자금용도와 상환계획을 제출하고 담보도 제공하는데 수십, 수백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배경이나 자금용도 등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결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금융투자회사도 인수인으로서 충실한 기업실사를 통해 제대로 된 기업을 투자자에게 선보인다는 정신으로, 발행기업의 증권신고서를 점검하고 충실한 작성을 도와야 한다. 감독당국은 자본시장의 자금조달과 투자자 보호라는 상반된 가치 속에서 균형감 있고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기업공시가 올바르게 이뤄졌는지를 철저히 심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인 투자자가 공시를 외면하면 공시주의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의 위험은 무엇인지, 조달자금은 어디에 쓰이는지 등 공시된 정보를 꼼꼼히 살피고 투자해야 한다. 시장참여자 모두가 노력할 때 자본시장의 투명성은 이뤄진다.

이정호 경제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