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책선거' 발목 잡는 선거법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실현 가능성이나 재원 조달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장밋빛 공약’을 남발한다는 지적과 함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비판도 받고 있지만, 과거 지역감정이나 ‘색깔론’에 호소하던 것보다는 진일보한 측면도 있다. 정책을 통해 심판받겠다는 자세 자체는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행 선거법은 제대로 된 ‘정책선거’를 가로막고 있다. 공직선거법 108조의 2는 ‘언론기관이나 단체가 정당·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에 관하여 비교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가주체, 평가단 구성, 평가지표·기준·방법 등 평가의 신뢰성·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도 함께 공포하도록 해 형평성 시비를 없애도록 했다.

문제는 평가결과를 공표하는 방법이다. 108조의 2항에는 ‘후보자 등별로 점수부여 또는 순위나 등급을 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열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함께 있다. 비교하고 평가하고 그 결과도 발표하라면서도, 핵심이라고 할 ‘누구의 정책이 누구보다 나은지’에 대해선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비교, 평가의 의미는 비교 대상 가운데 ‘누가 더 나은지’, ‘좋고 나쁨의 정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등을 분석해서 우열을 가리는 행위다. 그런데 점수나 서열화하지 말라는 선거법 규정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내놓으라는 궤변 같다.

더욱이 해당 조항은 기간조차도 따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는 선거일 6일 전부터 금지하고 있어 그 전에는 언제든지 숫자로 조사결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선거법 108조의 2에 점수 등의 발표 금지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점수나 순위매기기에 문제가 된다면 공식 선거기간, 또는 선거일 1~2개월 전까지로 정해 금지해도 될 텐데 이 조항은 선거가 없는 해일지라도 점수 발표는 못하도록 ‘원천봉쇄’하고 있다.

국민들이 각 정당의 정책이나 공약을 다 잘 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이 나서 비교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판단의 잣대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선거법은 ‘기계적 평등’에 얽매여 유권자들이 도움받을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정태웅 지식사회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