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안전지대 만들자] 사라진 숲…아름드리 금강송 대신 어린 나무들만 촘촘한 민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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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할퀴고 간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검게 그을린 산들이 이 마을을 흉물스럽게 둘러싸고 있었다. 마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 곳곳에 새로 심은 어린 나무들이 속속 자라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곧게 뻗은 아름드리 금강 소나무가 울창했던 이곳에 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것은 2000년 4월7일. 마을의 한 주민이 쓰레기를 소각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당시 산불진화대와 삼척시, 산림청 등 행정기관의 신속한 대응으로 초기 진화에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이날 밤 최대풍속 초속 27m의 강풍이 불기 시작하며 잔불이 살아났다. 이 잔불이 9일간 강풍을 타고 동해와 삼척을 거쳐 경북 울진까지 덮쳤다.
동해안 산불은 4월7일부터 4월15일까지 9일 동안 13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건국 이후 최대 산불로 기록됐다. 남산 면적의 80배에 달하는 2만4000㏊의 산림이 숯덩이가 됐고 사망 2명, 부상 15명을 합해 총 17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재산 피해도 상상을 초월했다. 주택 352동, 축사 및 창고 422동, 가재도구 3만2824점, 가축 754마리가 타 죽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액이 606억390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 마을 이장이던 윤상태 씨(55)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살면서 여러 차례 산불을 경험했지만 회오리바람 형태의 불기둥은 그때 처음 봤다”며 “여러 개의 불기둥이 강풍을 타고 이산 저산 옮겨다니는 모습을 보며 ‘모두 다 죽겠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불이 바람을 타고 산으로 옮겨 붙었다가 다시 마을로 내려와 집들과 돈사, 우사 등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삼켜버려 마을에 남아난 게 없었다”며 “대형 산불에 이어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매미가 우리 마을을 관통하면서 사실상 마을은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양지마을을 떠나 당시 산불 경로를 따라 되짚어 가봤다. 7번 국도를 타고 울진 방면으로 달리니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 중 한 곳인 원덕면 노곡3리의 검봉산 일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일대 역시 푸른 산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 옆 양 쪽의 이름 모를 산들에는 인공조림이 시작됐지만 어린 나무들로 채워져 있어 민둥산처럼 보였다.
산불 현장을 안내해준 임용진 동부지방산림청 보호계장도 당시 산불 진화 현장에 있었다. 그는 “근덕면 인근에 초곡이라는 포구가 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은 산불이 마을을 덮치자 모두 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했다”며 “마을의 주유소에 불이 붙을까봐 하루종일 주유소에 물을 뿌려대기도 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검봉산 일대를 올라갔다. 지금도 숯덩이로 변한 소나무 밑동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가까이 보니 지름이 40㎝는 족히 되는 소나무 밑동이었다. 산불이 나기 전 이곳의 산림이 얼마나 울창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생태복원을 위해 인공조림과 자연 복원이 함께 진행 중이다. 나무심기 등 생태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인공조림을 하지 않고 자연 복원을 추진한 곳의 어린 소나무는 야생동물의 먹잇감이 된 듯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다. 대신 인공조림을 한 지역의 소나무는 평균 높이 1.9m까지, 흉고 평균 지름도 1.7m로 비교적 잘 자라고 있었다. 어류와 수서생물 등도 토사 유출 등 어려움을 겪고서도 힘들게나마 회복 중이다.
동부지방산림청은 산불 이후 자연 복원지를 제외한 2574㏊에 9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주로 목재 생산과 단기 소득을 위한 경제수 조림과 송이 복원 조림에 초점을 맞췄다.
검봉산을 등지고 울진 쪽으로 더 내려가니 가곡천이 나왔다. 가곡천을 사이에 두고 산들이 마주보고 있었다. 가곡천 건너 울진 쪽 산들도 마찬가지로 검게 그을린 초라한 모습이다. 임 계장은 “불기둥이 거리가 1.2㎞ 정도 되는 가곡천을 넘어 반대편 산으로 옮겨 붙었다”며 “이 일대는 한동안 낮에도 산불 때문에 나는 연기로 어두컴컴했다”고 설명했다.삼척에서 시작된 동해안 대형 산불은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울진을 긴장시켰다. 다행히 산불 당국이 총력을 다해 진화에 나서 실제 원자력발전소까지는 산불이 접근하지 못했다.
이 같은 대형 산불이 종종 발생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늘자 동부지방산림청은 산신제까지 지내고 있다. 지난달 동부지방산림청은 산불 발생 위험이 큰 봄철을 앞두고 백두대간을 찾아 산신제를 열었다. 산신제는 허경태 동부지방산림청장이 초헌관, 강릉국유림관리소장이 아헌관, 평창국유림관리소장이 종헌관을 각각 맡았다. 이들은 울창하게 잘 가꿔온 아름다운 숲을 산불로부터 지키고 각종 산림사업의 무사고를 기원했다.
산신제까지 지낼 정도로 강원 영동지방은 해마다 봄이 되면 ‘산불 공포’에 시달린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영동지방에 산불이 크게 번지는 이유는 ‘양간지풍(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 때문이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간성,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을 말한다. 양간지풍은 고온 건조한 특성이 있는 데다 속도도 빠르다. 2005년 낙산사를 불태운 산불이 났을 때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32m까지 관측됐을 정도다. 특히 밤에 산불이 나면 동쪽으로 번져나가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나 산불 진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길. 2000년 동해안 산불 발생 지역은 이제 그대로가 거대한 산불예방 홍보 교육장이 됐다. 곳곳에서 산불의 상처를 딛고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는 산등성의 소나무들이 이제는 희망의 숲으로, 회생의 숲으로 다시 우리들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삼척·강릉·양양=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