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기 있는 왕이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몬페르라토 후작 부인은 꾀를 냈다. 왕의 식탁에 암탉으로 만든 요리만 계속 올렸다. 암탉 요리에 질려버린 왕이 까닭을 묻자 후작 부인이 대답했다. “모든 암컷들은 겉을 어떻게 꾸미든 속은 똑같답니다.” 14세기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색적이지만 재치가 넘친다. 《데카메론》이 ‘호색문학’이란 평가와 함께 인간 욕망을 꿰뚫은 고전으로 대접받게 된 이유다.

영국작가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28년 발표 당시 ‘성적 행동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해 수치심을 유발한다’는 혐의로 판금조치를 당했다.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된 뒤 영국으로 역수입되는 곡절도 겪었다. 로렌스는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정(情)은 육체적 결합을 통해서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 작품도 시간이 흐르면서 로맨스 문학의 백미로 성가를 높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외설문학 시비가 일었다. 대표적 케이스는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다.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라 ‘문학을 가장한 포르노’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그는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잠시 직장을 잃는 수난을 당했다. 작품 후기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성 문제에 대해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시바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 놓고 있는 양상과 같다.’

호주의 한 출판사가 낸 ‘야한 소설’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국 작가 E. L. 제임스가 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다. 뉴욕타임스 e북 분야, 인터넷 서점 아마존 등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일반서점에는 거의 깔리지 않아 주로 e북 형태로 팔리는 모양이다. 잘 생긴 재벌과 여대생이 채찍 쇠사슬 수갑 따위를 사용해 변태 행위를 즐기는 등 낯뜨거운 내용이 많다. 그런데도 유독 여성독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Mommy Porn)’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런 류의 소설과 거리가 멀었던 여성들이 많이 읽는 이유가 묘하다. 바로 e북의 특징 때문이란다. 책을 사거나 읽을 때 남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거리낌 없이 즐긴다는 얘기다. 인쇄술 발전의 숨은 동력이 색정 소설이란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e북도 야한 소설을 매개로 확산되려는 것일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