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대로도 못하게하니"…속끓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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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이사 책임 축소' 반대 파열음
고의 중과실엔 면책 안되는데도 '과잉 해석'
국민연금 "주주가치 훼손·경영진 모럴해저드"
고의 중과실엔 면책 안되는데도 '과잉 해석'
국민연금 "주주가치 훼손·경영진 모럴해저드"
개정 상법의 이사 책임 축소 규정에 따라 회사 정관을 바꾸려던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느닷없는 반대표에 당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직·간접적으로 9%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 수만 40여개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불협화음 내는 의결권 지침
개정 상법에 책임 축소 규정을 도입한 것은 이사의 책임제도를 개선해 유능한 경영인을 쉽게 영입하고 이사의 진취적인 경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상법은 기업의 경영 활동 전반을 규율하는 최상의 규정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개정 상법의 도입 취지와 반대로 가는 의결권 지침을 적용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의 지침 때문에 법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법을 따라야 할지, (국민연금의) 지침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정 상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주주 가치 측면에선 현행법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현행 상법에서는 총주주의 동의를 받아 면제해 주는 것 외에는 이사의 책임을 줄일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주주 가치를 높이고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선 현행 상법처럼 이사에게 무한책임을 지우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개정 상법의 이사 책임 축소 규정을 ‘과잉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의 또는 중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정임에도 국민연금이 경직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이 지침과 관련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도 문제로 제기된다. 일반적인 의결권 행사 기준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쳐 만들어지지만,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상장사협의회 등이 상법 개정안을 기초로 만든 표준 정관에 의견을 밝히는 형식으로 반대 의사를 내놓은 것이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현장에서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모르고 자의적으로 평가한 듯하다”고 말했다.
◆인수·합병 관련 지침도 논란
논란을 빚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은 이뿐만이 아니다. 코스닥의 A사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초다수결의제’를 정관에 도입하려다 의안 상정 자체를 포기했다.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침을 통해 해당 안건에 반대한다고 사전 통보했기 때문이다. 초다수결의제는 이사 선임과 해임 등의 결의 요건을 까다롭게 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해외 기업들에 비해 적대적 M&A 방어장치가 적은데 국민연금에까지 발목이 잡힌 셈”이라고 토로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