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자조합·유한책임회사 도입…소규모 창업기회 늘린다
다음달 1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상법은 건국 이후 가장 크게 수정됐다. 줄잡아 250여개 조항이 바뀌었다. 그런 만큼 기업 ‘라이프 사이클’ 전반은 물론 자본시장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개정된 상법 조항들이 기업의 창업부터 성장 및 신사업 진출, 자금조달 및 일반 경영, 구조조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망라하고 있어서다.

◆창업 활성화 기반 마련

개정 상법은 회사 설립 방식부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회사 형태는 현재 ‘주식ㆍ유한ㆍ합명ㆍ합자회사’ 등 4개에서 ‘합자조합ㆍ유한책임회사’ 등 2개가 추가돼 6개로 늘어난다. 유한책임회사는 출자자가 주식회사처럼 유한책임을 지면서도 이사나 감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돼 주식회사보다 유연한 지배구조를 갖춘 회사 형태다. 스마트폰 앱 개발이나 영화제작 등 지식기반산업에 적합해 청년 창업에 유용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합자조합은 경영을 맡는 무한책임 조합원과 재무적 투자자로 출자액만큼만 책임지는 유한책임조합원으로 구성된다. 제약회사 A와 게놈 해석의 권위자인 B교수가 투자자 C의 지원으로 생명공학 신약 공동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 합자조합을 만들 수 있다. 이때 A와 B는 무한책임을 갖고 경영을 맡고 C는 자금만 투자하게 된다. 중소기업 간 조인트벤처나 기업과 학계 간 산학연계에 적합하다. 이철송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새로운 회사형태 도입으로 인적자원이 중요한 지식기반 및 정보기술(IT) 사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조달 유연성 대폭 확대

기업들은 한층 유연해진 재무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주식과 채권발행 관련 규제가 대거 풀리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의결권 배제 여부, 상환ㆍ전환권한 부여 여부 등을 자유롭게 결합해 다양한 신종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로선 자금조달이 쉬워진다. 투자자 및 금융회사는 투자대상과 취급 금융상품이 확대된다. 액면가가 없는 무(無)액면 주식도 허용돼 기업들의 증자도 한층 수월해진다. 액면가는 그동안 주식발행가의 최저 하한선으로 작용, 주가가 낮은 기업의 증자를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채권발행제도도 크게 바뀐다. 상장사는 물론 비상장사도 이익참가부사채(이익배당에 참가할 수 있는 사채), 교환사채, 파생결합사채(파생상품적 요소가 결합된 사채) 등 다양한 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된다. 회사채 발행 한도도 없어진다.

한원규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업들이 과세 문제 등을 적절히 해결할 경우 다양한 증권 발행을 통해 리스크를 대폭 낮추고 신사업 진출이나 부동산 개발 등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병 및 구조조정 수단 다양화

기업들의 인수ㆍ합병(M&A), 사업재편 등에 큰 영향을 줄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관련 시장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자회사가 다른 회사를 합병할 경우 모회사 주식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삼각합병’이 가능해진다. 다른 기업을 합병할 때 주식 외에 현금 및 현물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도 현금만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권 방어 걱정 없이 다른 회사 합병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주총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신속히 진행하는 소규모 합병 요건도 ‘발행주식 수의 5% 미만’에서 ‘10% 미만’으로 확대된다. 소규모 회사 M&A나 대기업 계열사 간 통폐합 등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회생절차에서나 가능했던 출자전환이 일반 기업에도 허용돼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 등에 나설 수 있게 된다. 95% 이상 대주주가 5% 미만 소수주주 주식을 강제 매수할 수 있는 소수주식 강제매수제도 도입도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쓰일 전망이다. 하병제 삼정KPMG 기업금융담당 상무는 “M&A 당사자들에겐 딜 구조와 전략 수립 수단이, 재무적 투자자들에겐 투자옵션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개정 상법은 M&A 및 구조조정 시장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은정/이상열 기자 kej@hankyung.com

◆무액면주

액면가가 없는 주식. 미국 등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국내에서 액면가는 기업들이 유상증자 등을 할 때 발행가의 하한선 역할을 해왔다. 무액면주를 도입하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증자를 실시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액면주와 무액면주를 동시에 발행할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삼각합병

모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서 모기업의 주식을 대가로 지급하는 방식. 모회사는 합병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인수·합병(M&A)할 수 있고, 합병 대상 회사의 법적 의무나 책임을 승계하지 않아도 된다. 2007년 씨티그룹이 일본 닛코증권을 삼각합병 방식으로 M&A했다.

◆유한책임회사

출자자가 투자액 한도 내에서만 채무 변제 등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회사. 최소자본금 요건이나 사원총수 제한 등 여러 가지 제한을 폐지해 최대한 자율성을 인정해 준다. 청년 창업에 적합한 형태다.

◆합자조합

무한책임조합원과 유한책임조합원으로 구성된 형태. 무한책임조합원은 경영을 맡으면서 채무에 대해 개인적 재산 등을 통해 무한책임을 지는 반면 유한책임조합원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출자한 만큼만 책임을 진다. 기업과 학계 간 산학연계 사업에 적합한 형태다.

◆소수주주 축출제도

지분 9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가 5% 미만 소수 주주 주식을 공정한 가격에 강제로 매수해 1인 주주 회사로 만들 수 있도록 한 제도. 과다한 소수주주 관리비용이 발생하거나 소수주주의 주주권 남용으로 회사의 원활한 운영이 곤란한 경우 등에 사용할 수 있다.

◆파생결합증권

유가증권과 파생금융상품이 결합한 증권. 주가나 이자율, 환율, 신용도, 원자재, 농산물 등 다양한 기초자산의 가치변동에 수익률이 연계된다. 원금보장 정도, 투자기간, 기초자산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상품구성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