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상법 무용지물?…자본시장법과 곳곳 충돌
“상법에서는 규제를 상당수 풀었지만 다른 법이 고쳐지지 않아 무용지물인 조항이 많습니다. ”

한 상장사의 법무팀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개정 상법 시행을 통해 여러 규제가 파격적으로 완화됐지만 세법을 비롯한 다른 법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당장 실행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본시장법은 곳곳에서 개정 상법과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일반 기업들도 발행할 수 있게 되는 파생결합증권이 단적인 예다. 파생결합증권은 파생상품이 결합돼 수익률이 주가지수나 환율 등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증권을 말한다.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이다.

개정 상법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등 일반기업도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증권사만 파생결합증권을 발행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상호 충돌이 발생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탓이다.

회사가 주당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취득한 뒤 없애는 이익소각과 관련된 내용도 충돌이 발생한다. 개정 상법에서는 정관을 변경하지 않고도 회사가 자유롭게 이익소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반면 자본시장법은 여전히 이익소각을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거치도록 규정해 둔 상태다.

김춘 상장사협의회 법제조사파트장은 “상법 적용만 받는 비상장사들은 법 개정으로 기업 행위의 자율성을 확보하게 된 반면 자본시장법 규율까지 받는 상장사들은 계속 발목이 묶이게 된다”며 “특히 이익소각은 상장사의 소액주주들에게 유리한 법안임에도 시행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감독당국은 자본시장법 추가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개정된 상법 내용을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법적 성격을 갖고 있는 자본시장법이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며 “상법 개정 폭에 맞춰 자본시장법이 고쳐져야 기업현장에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