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 한창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브뤼헤(플랑드르의 도시·현 벨기에)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야심만만한 상인들로 넘쳤다. 그 중에서도 조반니 아르놀피니라는 이탈리아 루카(피렌체 부근의 도시) 출신의 남자는 많은 이의 부러움을 살 만큼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상업적 성공을 발판으로 부르고뉴 공작의 국정자문위원이 돼 브뤼헤시에 만만치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 작자는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를 온통 여인들을 농락하는 데 쏟았다. 조반나 체나미라는 아름다운 여인도 운수 사납게도 그의 탐욕의 제물이 됐다. 아르놀피니와 동향인 이 유부녀는 남편에게 내려진 추방령이 해제되도록 힘 좀 써달라고 부탁하러 왔다가 그만 납치당해 그의 후처로 들어앉고 말았다(최근에는 체나미가 아니라는 학설이 제기됐다). 결혼 당시 아르놀피니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로 그 시절로 치면 이제 이승의 삶을 정리하고 차분히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그의 주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젊은 부인 체나미와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체리 향이 정원에 가득한 초여름 어느 날 아르놀피니는 당대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인 얀 반 에이크와 결혼의 증인이 될 친구 한 명을 자신의 신방으로 초대했다.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명한 화가로 사실적인 묘사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아르놀피니의 부를 꼼꼼히 기록하고 부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데 그만한 적임자는 드물었다.

화가는 그런 주문자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림을 보면 창밖에서 들어온 빛으로 충만한 방의 한가운데 신혼부부가 서 있다. 둘은 혼인 의식에 걸맞게 호사스러운 옷과 장신구로 잔뜩 모양을 냈다. 작은 눈에 기다란 코와 뾰족한 턱을 가진 아르놀피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얼굴이다. 그는 기사들이 입는 가죽 코트에 검은색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앳된 얼굴의 임신한 신부는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의 표정에는 원치 않은 결혼을 한 때문인지 체념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족제비 털로 장식된 녹색의 겉옷 아래 정교하게 짜인 청색의 속옷을 입었다. 장신구는 목걸이와 팔찌가 전부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고가의 사치품이었음이 틀림없다.

특이한 점은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의 제스처다. 신랑은 지금 왼손으로 신부의 오른손을 잡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뱃속의 아이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 손금을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그림에 가득한 기독교적 상징을 근거로 그런 견해에 반대하고 있다.

그 점은 천장의 금속제 샹들리에 위에 꽂힌 한 자루의 불 밝힌 초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혼례의 불꽃 혹은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된다. 창문턱과 그 아래 탁자 위에 놓인 오렌지 역시 사과 대신 원죄를 상징하는 대용물로 기독교적이다. 왼편 아래 벗겨진 신발도 이들이 신 앞에서 경건한 자세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뒤편의 붉은색 침대는 부부의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결합을 상징한다. 또 부부 앞에 놓인 개는 충성과 사랑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침대 윗부분 벽에 부착된 거울이다. 가장자리에 예수의 일대기가 장식된 이 볼록 거울은 그림이 보여주지 않은 방안의 진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림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공간의 구조가 거울 속에서 명확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창밖의 정원과 천장의 모습 그리고 방 앞으로 길게 뚫린 복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던 두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아르놀피니의 초대를 받은 화가 반 에이크와 혼인의 증인이다. 그 묘사는 정교함의 극치다. 반 에이크는 이 부분을 그리기 위해 확대경을 대고 작업했다고 한다. 그는 거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덧붙임으로써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혼인 현장의 증언자로서의 책무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었다”라고 거울 위쪽에 써넣었다.

화가는 주문자의 의도대로 물질적 풍요로움과 부인의 아름다움을 꼼꼼히 기록했다. 아르놀피니가 만족했으리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가 반 에이크를 부른 것은 실수였다. 화가는 탐욕으로 가득한 그의 속된 얼굴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물질적 안락에 탐닉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적 면죄부를 얻으려 했던 15세기 신흥 부르주아의 이중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곧 르네상스의 가면 뒤에 가린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

교회 결혼식에서 어김없이 연주되는 곡이 있다.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칸타타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다. 이 곡은 1716년 바흐가 예수강림절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칸타타 ‘마음과 말 그리고 행동과 삶’ 중에 나오는 합창곡으로 1723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됐다.

칸타타는 합창과 아리아, 중창 등이 혼합된 성악곡으로 바흐는 교회의 요청에 따라 모두 200여곡의 작품을 남겼다. 원곡은 트럼펫, 오보에, 현악기로 반주를 넣도록 했으나 오늘날에는 피아노 솔로로도 많이 연주된다.

이 곡이 결혼식의 단골 레퍼토리가 된 사연은 확실치 않다. 곡 전반에 넘쳐흐르는 환희 가득한 코러스와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 된 예수의 강림이라는 노랫말이 혼례 축하곡으로 적합하다고 여겨진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실제로 기독교 교리에서는 이상적인 부부의 사랑을 정신과 육체가 혼연일체가 된 경지로 본 만큼 이 곡이 웨딩 송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