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외래 약제비 18년새 554% 증가…건보재정 안정위해 인하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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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 24%…OECD 평균의 1.5배 수준
오스트리아·덴마크 등 유럽이어 일본도 2년마다 약가 인하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 24%…OECD 평균의 1.5배 수준
오스트리아·덴마크 등 유럽이어 일본도 2년마다 약가 인하
이런 지출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2020년에 8.55%로 인상돼야 건강보험제도가 지속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건강보험진료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약품비는 2001년 23.46%에서 2010년 29.25%로 크게 늘어났다. 약품비에 약국 조제료를 합산한 약제비를 고려할 경우 그 비중이 2010년 35.55%에 달한다. 총액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만은 2008년 약품비가 1250억대만달러(4조6000억원)로 진료비 대비 약품비 비중이 24.8%였다. 대만의 약품비 비중은 1998년 이후 10년간 25% 내외에서 꾸준히 지켜왔다. 총액예산제란 정부와 관련 의료단체가 사전 협의를 통해 약품비 총액을 미리 정해두고 이에 따라 약품비를 지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약제비 증가속도는 지나치게 가파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자료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대비 외래 약제비 비중은 2007년 24.5%였다. OECD 평균인 16.3%의 1.5배 수준으로 매우 높다. 지금 당장 약품비 지출 억제 방안을 내놓아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재정에 큰 위협이 될 뿐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의 미래 지속가능성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
선진국의 제약사들이 약가 인하에 대해 합의해 온 배경은 무엇일까. 선진국 제약사들은 수익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이 상이함에도 선진국의 제약사와 보험자(건강보험공단)는 보험재정 안정화를 통해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목표를 공유했다. 국내 제약사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이후, 특히 의약품 급여가 본격화된 의약분업 이후 약제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제약사 매출액도 급성장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래약제비는 1991년 2조4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01년 8조7000억원, 2008년 15조9000억원으로 18년간 554.8%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이 11.7%나 된다. 특히 의약분업 이전 1995~1999년 외래약제비 연평균 증가율은 9.1%였으나 의약분업 이후 2001~2005년 외래약제비 연평균 증가율은 9.7%로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는 의약품의 건강보험급여 확대를 통해 제약사 매출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제약사가 약가 인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돼 건강보험제도의 안정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약가 인하 조치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는 게 아니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경기침체기에 시행됐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단기적으로 재정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해왔던 경험이 있고, 현재도 재정안정화 조치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약가 인하 조치는 약품비 지출 안정화 혹은 감소를 목적으로 경기침체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빈번하게 시행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1997년 사회보험과 제약사의 협의 아래 약가 인하를 단행했으며, 덴마크는 1993, 1996, 1997년 3차에 걸쳐 가격 동결 및 인하 조치를 시행했다. 제약사와 협의를 통해 국가예산 범위 내에서 공공약품비를 감소하려는 목표에서 이뤄진 조치였다. 독일은 1993~1994년 제약사와 협의, 처방의약품에 대해 5%, 일반의약품(OTC)은 2% 인하했다. 세계 굴지의 제약사들이 포진한 영국도 1993년 제약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2.5% 약가를 내렸다. 선진국은 현재도 다양한 방식으로 약가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제네릭(복제의약품)을 보험급여대상 의약품 목록에 새로 등재하면서 가격을 내리는 방식이다.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경제성 원칙에 따라 제네릭 등재 가격이 점차 낮게 책정되는 형태다. 3차 제네릭이 등재되면 오리지널 최초 약가의 39.8% 수준에서 약가가 정해진다. 이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과 1·2차 제네릭이 모두 3차 제네릭 약가수준과 동일하게 약가를 인하해야만 보험 상환이 이뤄진다.
이웃나라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실거래가를 조사해 그 결과에 따라 2년마다 약가를 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1981년 18.6%, 2008년 5.2% 각각 약가를 내렸다.
결국 우리나라만 파격적인 약가 인하를 단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약가 인하 조치는 2000년 이후 적극 시행해 온 약가 사후관리방식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약가사후관리 방식으로 실거래가 조사와 가격사용량 연동제에 따른 약가 인하 등을 시행해왔다. 지난 10년간 시행해온 실거래가 조사를 통해 약가가 떨어진 의약품 품목 수는 1만8165개에 달하지만 이에 따른 재정절감 추정액은 4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지출한 보험약품비 80조8000억원의 0.49% 수준이다. 또한 2007년부터 시작된 ‘사용량-약가 연동제’를 통해 2011년까지 191개 품목의 가격이 재조정됐고 200억원이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또한 인하율이 10% 내외로 제한됐다. 약가사후관리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약가 인하 조치는 기존 약가사후조정 조치의 미비점을 전면 개편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를 통해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율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약품비 증가율을 억제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옥 국민건강보험공단 연구원
△이화여대 약학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건강관리약제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