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에 빠진 KLPGA '회심의 탈출 샷'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으로 6일 추대된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57·사진)이 협회장직 제의를 받은 것은 한 달 보름 전이었다. 협회 집행부가 전임 회장단으로 구성된 고문단에 ‘기업인 회장’을 선정해달라고 부탁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였다. 12명이 자천타천으로 협회장 후보에 오른 상황이었다.

구 회장은 제의를 받고 한 달가량 고민하다 열흘 전 협회 이사진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협회장 제의를 수락한다는 뜻이었다. 이사진은 구 회장의 겸손함과 차분한 인품에 탄복했다고 한다.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이왕이면 회원이 하는 곳으로 가자고 해 협회 건물 근처의 박현옥 회원이 운영하는 일식집으로 갔다”며 무엇보다 회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구 회장의 마음 씀씀이에 놀랐다고 했다.

구 회장은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회장 선출을 놓고 홍역을 치른 KLPGA로서는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최적임자를 찾은 셈이다.

2016년까지 KLPGA를 이끌게 된 구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일이 산적해 있어 걱정이 앞서지만 회원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또 “한국 여자골프의 발전과 위상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회원들과 소통하면서 화합을 이뤄 협회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1995년 LG전자 미주법인 이사로 발령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구 회장은 80타대 초반을 치는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골프의 즐거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골프 실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체력 훈련이다. 구 회장과 함께 골프를 쳐 본 사람들은 “연습을 안 하면서도 샷 실수가 거의 없다. 시원시원하게 치는 스타일이라 함께 라운드하고 나면 저절로 상쾌해진다”고 말한다. 베스트 스코어는 73타. 평균 드라이버샷은 220~230야드가 나간다.

구 회장은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다 실수하면 더블보기를 할 수 있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이 더 짜릿하다”고 말한다. 스코어에 연연해 해저드, 벙커 등 장애물을 피하는 안전 위주의 공략보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버디 또는 이글을 노린다.

2007년 1월 법정관리 중인 신발회사 국제상사를 인수, 지금의 LS네트웍스로 재탄생시킨 과정에서도 도전적인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LS그룹은 LG그룹에서 분리한 후 인수·합병(M&A)으로 최대금액인 8550억원을 들여 국제상사를 인수했다. 무리한 인수였다는 주위의 우려를 떨치고 인수 당시 매출의 2배가 넘는 회사로 키워냈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넷째 동생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형은 구자열 LS전선 회장이며, 동생은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이다. 1973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ROTC 장교 출신으로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구 회장은 9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에서 열리는 KLPGA 정기총회 직후 취임식을 갖는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