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금융당국의 겉도는 카드 대책
금융감독 당국의 신용카드 대책이 겉돌고 있다. 당국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카드업계에 상반된 지도 감독까지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체크카드 활성화 대책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체크카드 등 직불형 카드 이용을 늘리겠다며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공적인 용도로 사용 중인 신용카드를 가급적 직불형 카드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업무용 신용카드를 직불형 카드로 바꾼 곳은 한 곳도 없다. 심지어 금융당국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검토해 본 결과 시스템상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현금을 많이 넣어 둘 필요가 없어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반면 직불형 카드는 카드를 쓰지 않더라도 은행 계좌에 어느 정도 돈을 넣어둬야 한다. 은행 계좌에 돈을 너무 조금 넣어두면 결제가 안 될 수가 있고, 돈을 너무 많이 넣어두면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직불형 카드 계좌에 필요한 예산을 미리 확정하기 쉽지 않다. 하나의 은행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는 몇 개가 적당한지 등도 미리 따져봐야 하니 생각할 게 적지 않다.

직불형 카드는 업무상 실수나 횡령 등이 발생했을 때 되돌리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신용카드는 결제일 전에 비교적 쉽게 구매를 취소할 수 있지만, 직불형 카드는 한번 결제가 이뤄지면 곧바로 예금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금감원 자체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아니어서 직불형 카드를 사용하는 대상 기관이 아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의 안이한 모습은 직불형 카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신용카드 회사에 마케팅 비용을 줄이라면서도 회원들의 부가 서비스를 유지하라는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카드업계 관계자들은 “포인트를 쌓아주고 영화표 등을 할인해주는 돈이 마케팅 비용에서 나오는데, 마케팅 비용을 축소하면서 어떻게 부가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실효성없는 대책을 내놓는 것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 때문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에 체크카드 사용을 권장했는데 안 쓰더라”는 핑계와 “카드업계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면피 거리’를 만드는 데 이미 성공한 것 같다.

박종서 경제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