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다지기…"통미봉남 전략 일환"

북한이 최근 우리 군(軍) 부대에서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 이뤄졌다며 연일 비난성명을 쏟아내는 등 대남비난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남한의 일부 언론은 지난달 27일 인천의 한 부대가 내무반 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사진을 배치하고 전투구호를 붙인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지난 2일 대변인 성명을 내놓은 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매체에서 사흘간 `최고존엄 모독'을 빌미로 한 대남비난 보도는 무려 90건이 넘는다.

하루에 30건 넘는 비난을 쏟아낸 셈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일 담화를 통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명박 역적패당에 이미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우리 식대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도 담화에서 "원수격멸의 준비태세에 진입했다.

성전은 이미 선포됐다"고 위협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군인과 주민 15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군중대회를 중계했다.

대회에 모인인파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최대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역시 `최고존엄을 건드린 자들은 무사할 수 없다'는 제목의 논설을 게재했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부위원장의 판문점 시찰 소식을 전하며 판문점 초병들이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을 짓뭉갤 `멸적의 정신'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루 전인 3일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 부국장인 곽철희 소장(준장격)이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천만 군민의 무자비한 성전 앞에 특대형 도발을 감행한 이명박 역도와 그 사환꾼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해지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조선중앙TV는 이날 북한 군인들이 `정신병자 이명박역도와 군부호전광들을 때려잡자'는 구호가 적힌 표적에 사격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미친 X' 등의 욕설과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북한의 이처럼 격한 반응은 북한 내에서 기본적으로 최고지도자에 대한 모독이나 비난을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일영도체계와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내세우는 북한은 `최고존엄'을 `천만군민의 생명'이라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비난을 `특대형비상사건' `최대최악의 악행'이라고 규정한다.

북한은 지난해 6월에도 국내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 위원장 등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사용한 데 대해 "우리 천만군민의 보복대응"을 언급하며 청와대에 사과를 요구하는 등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난에 거센 반발을 보였다.

북한은 이번 문제를 적극 부각함으로써 김정일 체제의 안정과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속내도 드러내고 있다.

북한 매체가 최고사령부 성명의 발표 이후 청년 학생 174만여명이 군대에 입대할 것을 탄원했다고 밝히고 경공업상,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중앙위원회 제1비서, 군인 등 각계각층의 격앙된 목소리를 소개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주민에게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소재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최고존엄을 강조하는 것은 김정은 체제를 다지는 과정에서 남측이 함부로 김 부위원장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고 내부결속을 꾀하려는 행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3차 북미고위급 회담에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과 대북 영양지원 합의를 끌어낸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강화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이번 사건을 최대한 이슈화함으로써 남북대화를 종용하는 미국 등에 대해 `남쪽과는 더이상 대화할 수 없다'고 일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권력을 교체하는 민감한 시기에 `최고존엄'에 대한 비방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남측은 한반도 대화 국면에 역행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행동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noj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