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고용 유연성 높여 취업기회 확대…'비정규직=나쁜 일자리' 인식 잘못
대법원이 최근 현대자동차 사내 하도급 근로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모씨가 낸 소송에서 “사내 하도급 근로자가 원청(原請)업체의 노무 지휘를 직접 받으며 2년 이상 일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한국 고용시장에 파장이 일고 있다.

노동계는 당연히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노동계는 사내 하도급이라는 형태 자체가 원래 비정상적이라며 현대차를 포함한 대기업은 사내 하도급 근로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이 실현될 경우 2010년 현재 전국의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사내 하도급 근로자 32만5932명 가운데 ‘최씨’처럼 2년 이상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해온 근로자는 원청업체의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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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영계는 반대한다. 경영계는 노동계가 이번 판결을 투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생산시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시장이 경직되는 등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씨’와 달리 2년 미만 근로자들은 대량 해고될 가능성이 크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보자.

“제5조(근로자파견대상업무 등) ①…근로자 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를 제외한다.(개정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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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조(파견기간) ①근로자파견기간은…1년을 초과하지 못하고… ②…연장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하며, 연장된 기간을 포함한 총 파견기간은 2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신설 2006.12.21)

[맞짱 토론] 고용 유연성 높여 취업기회 확대…'비정규직=나쁜 일자리' 인식 잘못
제6조의 2(고용의무) 1.…규정을 위반하여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①사용업주가…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

이 같은 현행 근로자파견법에서는 노동시장이 경직돼 비정규직 일자리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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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근로자파견법 도입 과정을 보자. 1997년 12월3일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자 IMF는 한국에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요구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1998년 2월10일 정리해고법과 함께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했다. 도입 당시 파견사업은 28개로 한정됐다. 근로자파견제 도입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후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대선 전략으로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이 ‘비정규직 보호법’ 도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뜨거운 감자가 돼 3년 남짓 표류하다가 국회로 굴러간 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둔 여·야가 야합해 2006년 11월30일에 2007년 7월 실시를 전제로 간신히 통과됐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도입 과정에서, 파견 사업은 전 사업에 확대 실시돼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가 노동계의 파워에 밀려 종전대로 28개로 한정됐고, 그 후 법 개정에서 제조업이 근로자파견사업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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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어떠한가?

근로자파견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근로자들에게 취업기회를 넓힌다고 인정돼 국제노동기구(ILO)는 근로자파견제도 활용을 적극 권장해 왔다. 이 결과 스페인은 근로자파견을 불법화했다가 1994년 합법화시켰다. 이탈리아는 1997년 근로자파견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1994년부터 파견 최대 허용기간을 9개월로 연장했다가 1997년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일본은 1986년 근로자파견법 제정 때 도입했던 16개 파견대상 업종을 1996년 27개로 늘린 후 1999년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등은 근로자파견법이 아예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파견 근로자’ 정의를 구체화해 국내 고용시장에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시킬 것이다.

한국은 ‘노동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나라’로 알려진 독일보다 더 경직적이다.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Fraser Institute)가 발표하는 세계경제자유지수(Economic Freedom of The World Index) 조사 중 노동시장 자유도 부문에서 2009년 조사대상 141개국 가운데 129위로 독일(112위)보다 자유도가 낮았다.

이 순위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는 123개국 가운데 58위,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127개국 가운데 81위였다. 또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141개국 가운데 113위로 떨어진 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141개국 가운데 129위를 기록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심한 정도(2009년 기준)에서 전 세계 141개국 가운데 13위다(표 참조).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정규직 고용보호가 심하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포르투갈에 이어 2위다.

비정규직은 과연 ‘나쁜 일자리’인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실업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보호를 완화하고 있다.

기업은 구조조정의 용이함 때문에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근로자는 경력 축적이나 직업탐색 등을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독일 일본 등은 고용 유연성 제고를 위해 근로자파견제를 전 업종으로 확대 실시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포퓰리즘에 빠져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대통령선거 전략의 하나로 부각시켰고, 끝내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을 도입하는 바람에 비정규직이 ‘나쁜 일자리’로 인식돼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시켜 왔다. 4·11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대부분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마치 사회주의처럼 비정규직 국가관리를 내세우고 있어서 우려된다.

우리도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언제쯤 노조 파워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될까?

어느 정부가 들어서서 근로자파견사업을 전 사업으로 확대 실시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게 될까? 한국경제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맞짱 토론] 고용 유연성 높여 취업기회 확대…'비정규직=나쁜 일자리' 인식 잘못


박동운 교수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 박사 △전남대 교수 △단국대 노사관계대학원장 △단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