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시장경제와 개방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별명은 ‘대책반장’이다. 금융 현안이 생길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는 ‘반장’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작년 1월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연착륙 △론스타의 대주주 적경성 판단(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창업·중소기업 금융제도 개선 등 해묵은 현안들을 처리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요즘 힘겨워하고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코앞에 둔 국회가 밀어붙인 포퓰리즘 법안 때문이다. ‘부실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여론의 순풍을 받아 보류하는 성과를 얻어냈지만 영세가맹점 카드수수료율을 금융위가 정하라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지난 28일 집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시장경제와 개방경제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라며 “포퓰리즘의 바람이 거세면 거셀수록 정부는 더욱 굳건하게 시장경제의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 특별법은 무산된 것인가.

“지난해 4월부터 제기된 문제다. 10개월 동안 입법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며 설득했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을) 현행법 테두리에서 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다. 후순위 채권자를 구제하고 파산배당을 극대화하는 노력은 과거 어떤 구조조정 때보다 열심히 했다. 형평성과 법적인 안정성 그리고 금융시장 기본원리를 지켜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을 얻었다.”

▶여전법은 왜 막지 못했나.

“여전법은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도 급작스럽게 논의돼 전체회의에 올라갔다. 이례적이었다. 상황을 보고받기도 전에 통과돼 버렸다. 법사위에선 ‘정부가 정한다’는 문구를 빼는 것으로 여야 간사들이 합의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달라져 원안대로 처리됐다.”

▶반대한 핵심적인 이유는 뭔가.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 전례가 생기면 앞으로 주유소 휘발류 가격도 정부가 정하라고 하고, 통신비도 정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정하는 날부터 불만이 생긴다. "

▶대체 입법을 검토하나.

“법 조문은 일단 금융위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돼 있어 정부 부담이 적지 않다. 입법 취지를 시장친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법률 검토를 해봐야 한다. 아직 대체 입법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두 법안 모두 금융회사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불러온 것 아닌가.

“월스트리트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금융이 실물과 괴리돼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자극적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우리는 좀 다르다. 우리 금융회사들이 정상화된 것은 10년 남짓이다. 혹독한 구조조정도 겪었다. 제대로 돈을 번 것도 불과 몇 년이다. 월가 상황을 우리 금융시장에 일률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맞지 않다. ”

▶우리 사회에서 반시장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데.

“시장경제라는 것은 우리 경제를 받쳐주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근본 원천이 시장경제고 개방경제다. 이 두 가지 축으로 세계적인 국가를 건설해왔다. 이 두 기둥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해선 안 된다. 시장경제와 개방경제는 앞으로 항구히 지켜나갈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두 법안에 반대한 이유도 그래서인가.

“시장경제의 기본질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보다 단호한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바람이 불수록 집을 더 단단하게 묶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외부로부터 포퓰리즘 요구가 거세질수록 정부는 더 굳게 시장경제 체제의 지킴이 노릇을 해야 한다.”

▶바람이 거세지면 정부도 타협할 것인가.

“그렇게 하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편할 수 있다. ‘우리’라는 사람은 결국 다 사라진다. 세계의 주요 국가라는 시스템을 물려줘야 하는데, 흔들리는 시스템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 후손들이 최선을 다해서 세계국가 건설을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안주해 흔들리면 그 이상 못 간다.”

▶포퓰리즘 공약들이 먹혀들고 있지 않나.

“한국은 자동 안전장치가 잘 작동되는 사회라고 본다. 한편에선 눈앞에 있는 이익만 보는 포퓰리즘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이를 수정하고 교정하려는 움직임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최근 일련의 사태도 그랬다. 포퓰리즘이 강해지자 정부가 견고하게 입장을 유지하고, 언론도 문제점을 일관되게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있었지 않나. ”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은행이 담보만 잡고 갚던지 안 갚던지 모르겠다고 하면 안 된다. DTI는 수요자 보호장치다.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막는 건전성 보호장치이기도 하다. 완화하자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DTI는 원래 부동산 정책과 관계없이 태동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위해 DTI를 활용하는 것은 경제의 기본적인 핵심가치를 훼손하고, 부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정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다.”

▶2일 출범하는 농협지주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선발 금융지주사에 비해 인력과 금융기법 등에서 격차가 있다고 보는 게 객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앞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고, 건전성을 확보하는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서 농협이 문제가 있었다. 위험부문 대출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금융 인력을 보강하고 기법들을 도입하는 데 지주사 출범이 기회가 될 수 있다.”

▶2금융권 가계대출이 심각한 수준인가.

“2007년부터 작년까지 은행보다 2금융권 대출 증가 속도가 빨랐다. 비과세저축도 허용했고 여신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내부통제 장치가 미흡한 만큼 미세조정을 통해 연착륙시켜 나가겠다. 다만 서민금융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차를 두고 간접적인 규제 중심으로 관리해 나가겠다.”

▶은행 직원의 면책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보나.

“금융회사마다 면책기준과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실질적으로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고, 면책하고도 성과평가나 영업점 평가할 때 또 집어넣는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면책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출 심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감독기관에서도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 쉽게 말해 ‘죄 없음’이라는 확실한 도장을 찍어주겠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