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엘피다의 법정관리 신청은 ‘30년 D램 전쟁’이 사실상 끝났음을 뜻한다. 승자는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 한국 업체다. 길고 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빅3’(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수익성은 차차 개선될 것으로 관측된다.
○파산한 일본 연합군
엘피다는 1980~1990년대 세계 D램 시장의 강자였던 NEC 히타치 미쓰비시 등 일본 업체의 합작법인이다. 2002년 삼성전자에 맞서기 위해 하나로 뭉쳤다. 이름도 그리스어로 희망이란 뜻의 ‘엘피스’란 단어에서 따왔다. 그러나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업체들이 수많은 합종연횡을 했지만 기술방식과 기업문화 등의 차이로 시너지를 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엘피다는 2007년,2008년 2년간 2000억엔이 넘는 적자를 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300억엔의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채권단도 1000억엔을 출자했다. 2009년과 2010년 연속 흑자를 냈지만 2010년 말 D램 값 급락과 엔고가 겹쳐 다시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4~12월 9개월간 전년 동기보다 48% 급감한 2196억엔의 매출에 989억엔의 적자를 냈다. 2011년 말 부채는 4800억엔(6조 5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속속 융자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다음달 말까지 상환해야 할 채무만 950억엔에 이른다.
○매각·청산·구조조정 갈림길
업계의 관심은 엘피다가 가진 D램 생산시설이 어디로 갈 것인가다. 법정관리가 청산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회사갱생법(법정관리)이 적용되면 공적기관인 기업재생지원기구가 관리인으로 선정돼 경영정상화를 주도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엘피다가 유일한 일본 내 D램 업체란 점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가 청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다니료 소장은 “앞으로 비메모리 사업을 하는 르네사스, 도시바 등과 제휴해 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주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엘피다가 생산설비를 비메모리 업체에 매각하고 청산할 때 한국 업체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도시바나 마이크론에 매각되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3위 업체가 등장하겠지만 합병 과정에서 생산설비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 업체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투자여력이 줄어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