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만능주의 벗어나야
한국 경제가 성장력이 약화되고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갈 길을 잃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내 경제 잠재성장률은 내수 침체와 신성장 동력의 부재 등으로 이전 10년의 4%대에서 3%대로 낮아졌다.

성장률이 3%대에 그치면 매년 40만명 이상 쏟아지는 신규 청년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세계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의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북한의 정치 체제 변화로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확대될 위험성이 큰 점도 한국 경제가 떠안아야 할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대내외적인 여건 변화를 감안하면 한국 경제가 갈 길은 당연히 다시금 성장력을 확충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국내 경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선거 계절을 맞이해 오직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적 처방들이 쏟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보수와 진보에 상관없이 제시되고 있는 경제 해법은 대기업 죽이기, 공평하게 나눠 갖기, 정부 재정 만능주의로 수렴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상대적 빈곤 현상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는 데만 집착하다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난의 늪’에 빠지는 절대적 빈곤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나 그리스와 같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워싱턴DC 주변에 사는 북한 출신의 노학자를 얼마 전 만나 미국 생활의 느낌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미국은 사회주의다’라는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미국 모든 사람들이 풍요롭게 사는 것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과 같다는 의미다.

절대적 빈곤을 체험한 공산권 학자의 눈에 상대적 빈곤은 사치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상대적 빈곤 현상은 성장력이 떨어질 때 심화된다. 미국이 2000년대 초반 금융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세계 경제가 고성장을 구가할 때 빈부격차 문제는 이처럼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로 전환되면서 분배 구조가 더욱 악화됐다. 상대적 빈곤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느끼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빈부격차를 비난하는 월가 시위에는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사 직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같은 직장에서 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상대적 빈곤 문제는 단순히 약자를 보호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성장 동력인 대기업을 무력화하고, 그나마 벌어놓은 국부를 미래지향적으로 확대재생산하기보다는 현재 만족을 위해 다 써버리고, 수입이 없는 정부 재정에만 의존해서는 수년 내 한국 경제의 모든 부는 바닥이 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나눔을 위한 성장 정책을 우선 수립해야 한다. 선진국보다 소득 수준이 낮고 부존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성장의 견인차로서 대기업의 장점을 살리고, 소모적이며 누증하는 시혜적 지원보다는 생산적 일자리를 최대한 늘리는 한편, 정부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민간 자율과 창의성을 높이는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빈부격차에 대한 보완적 대책도 물론 필요하다. 다만 단기간의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체제 전환을 통해서는 실효성보다는 부작용만 커진다. 이보다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자생하는 공생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대기업,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서로 반목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보다는, 자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관행들과 제도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일이다. 이와 함께 서로 나누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점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고, 나눔이 우리 사회의 자랑스러운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 의식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병규 < 현대경제연구원 / 경제연구본부장 bkyoo@hr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