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경영수업 2題 '트럭 vs 벤츠'
두산그룹은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증한 국내 최고(最古) 기업이다. 1896년 서울 배오개(종로4가)에서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 모태로, 올해 116년째를 맞는다.

두산의 역사에서는 유구한 연표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구조조정”(나인철 한양대 경영대학원장)을 이룬 역동성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맥주(OB맥주)에서 시작해 코카콜라 커피(한국네슬레) 소주(처음처럼) 김치·두부(종가집) 등 먹거리와 필름(한국코닥) 사무용품(한국3M)에 이르기까지 국내 1위 소비재 그룹에서, 담수플랜트 세계 1위·건설장비 세계 5위의 글로벌 중공업그룹으로 대변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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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100주년을 1년 앞둔 1995년부터 시작된 두산의 구조조정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두산은 최근 혼다와 재규어, 랜드로버를 판매하는 수입차 딜러 사업을 정리했다. 사업 철수 발표가 나자 ‘두산이 수입차 사업을 했나’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공업 그룹으로서의 이미지가 확고해진 데다, 수입차 사업 법인명이 DFMS로 ‘두산’이 가려진 영향도 있다.

수입차 사업이 경영 수업?

사실 두산의 수입차 사업 철수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소비재 그룹 시절인 1990년대 초반 시작한 사업으로, 그룹의 변신 뒤에도 남아 있던 극소수의 비주력 사업군 중 하나였다. 철수 동기 역시 자발적인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일본차의 부진으로 판매대수가 크게 줄어 적자를 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골목상권 논란’ 등으로 오너 2, 3세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두산의 수입차 사업은 창업주 4세들인 ‘원(原)’자 돌림 네 사람이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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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두산 경영진의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오너 후손들이 비주력 분야에 진출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재빨리 문제의 싹을 자르고 나선 것이다. 두산 구조조정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속도’의 중요성을 재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그 영향인지 ‘발야구’라는 애칭을 얻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야구 스타일 역시 속도를 중시한다.

트럭 몰며 익힌 業의 본질

두산이 수입차 사업에서 손을 떼자 효성, 코오롱 같은 수입차 사업을 하는 다른 대기업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두산처럼 사업을 접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벤츠, BMW 등 인기 차종을 다루고 있어 볼륨이 훨씬 큰 데다, 어떤 곳은 수입차 사업 비중이 그룹 매출의 5%에 육박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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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대한 선택은 기업의 자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수입차 사업을 계속해 갈 경우 몇 가지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수입차=땅짚고 헤엄치기’란 인식이 강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기업가 정신이 끼어들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대기업 오너 후손들이 관심을 갖는 데 대해 판매에서 애프터서비스(AS)까지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 유명 제빵업체의 회장 얘기가 생각난다. 창업주 2세인 그는 대학시절부터 트럭을 직접 몰고 동네 구멍가게를 돌며 영업하면서 일을 배워 나갔다고 한다. 그는 선친의 사업을 수십배 키워 사실상 제2의 창업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수업은 그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치열하게 업(業)의 본질을 익혀가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고 하지 않았던가.

윤성민 산업부 차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