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류가 바꿔놓은 도쿄 거리
“와우~! 사랑합니다!”

지난 18일 ‘명동 디스코’라는 제목의 K팝 파티가 열린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클럽. 아이돌 가수 빅뱅의 히트곡 ‘마지막 인사’가 흘러나오자마자 이곳을 가득 메운 일본 젊은이들이 서툰 한국 발음으로 함성을 질렀다. 이들은 빠른 랩 가사를 따라 불렀고, 일부는 빅뱅의 춤사위를 흉내내면서 즐거워했다. 이곳에서 만난 회사원 이시즈카 사키 씨(23)는 “주말이 되면 삼겹살에 막걸리를 마시고 K팝 클럽에 와서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자가 찾은 도쿄는 ‘한류’ 바람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그 중심은 JR선 신오쿠보역에서 이어지는 신오쿠보 거리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싸구려 한인 민박집과 허름한 한식당이 산재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러 발걸음을 옮기는 ‘핫스폿’으로 거듭났다. 이 때문에 주말은 물론 평일 낮에도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북적인다고 한다. “일본 관광객들이 몰려든 명동 거리 같은 느낌을 준다”(재일동포 이민화 씨)는 평가다.

유학생 박예진 씨(24)는 “한국 드라마의 배경이 된 ‘커피프린스’ 카페를 벤치마킹한 카페나 삼겹살집 등엔 요즘 지방에서 찾아온 관광객도 많아 일본 사투리도 자주 들린다”며 “아이돌 가수들의 신규 앨범이나 사진, 팬시상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신오쿠보 지역에 문을 연 K플라자엔 한국 식품을 취급하는 대형 슈퍼마트 ‘총각네’는 물론, 화장품을 판매하는 ‘스킨가든’, K팝 등 문화제품 판매 공간 등이 한데 들어서 이 지역의 새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대형마트에는 홍초, 김치, 과자, 호떡믹스 등이 브랜드 별로 깔끔하게 진열돼 있고, 소주도 C1소주나 화이트소주 등 지방 소주까지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이곳의 한 직원은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한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오픈한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벌써부터 입소문을 듣고 온 일본인들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장 바구니에 소주와 김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류 바람’이 ‘반짝 열기’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소람 도쿄/중기과학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