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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해품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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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천자칼럼] '해품달' 열풍
    드라마는 킬러콘텐츠다. 뜨기 어렵지만 일단 뜨면 다른 모든 걸 잠재운다. MBC 수목극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의 극 중 이름을 딴 ‘훤 앓이’가 유행하면서 5주 연속 시청률 1위에 2월 셋째주엔 주간시청률 38%에 이르면서 국민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말이 38%지 지난해 방영된 공중파 드라마 43편 중 20% 이상은 고작 2편이요, 종편드라마의 경우 1% 미만인 걸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 주연배우 김수현의 몸값이 2배 이상 오르면서 소속사 주가는 두 달 만에 2배 가까이 뛰고, 제작사 주가 역시 한 달 새 7.3%나 상승했다. 정은궐의 원작소설 또한 베스트셀러 1위를 이어간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이훤이란 가상의 왕과 무녀의 애절한 사랑이 그것이다. 사극은 대개 역사적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이지만 ‘해품달’은 애당초 100% 허구로 돼 있다. 무녀가 살기(殺氣)로 사람을 해친다거나 한밤중 몰래 옆에 앉아 잠든 사람의 액을 받아낸다거나 하는 설정으로 사실 여부 논란에 휘말릴 일이 없는 셈이다.

    [천자칼럼] '해품달' 열풍
    왕실의 권력 다툼이 배경이지만 정치색과는 거리가 먼 로맨스 사극이 뜬 데 대한 분석은 구구하다. 극 초반 만화 같은 판타지와 아역배우들의 깜찍한 연기가 한몫했다, 김수현 정일우 송재희 등 꽃미남 배우들이 여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호조판서와 공주의 주책 및 내시 형선의 멍청한 듯한 충정이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등.

    그러나 이 드라마의 힘은 일편단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의 사랑은 순정이란 말이 사어(死語)가 아니라고 전한다. 외척의 협박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허연우(한가인)를 세자빈으로 맞았던 그는 연우가 죽은 뒤에도 그를 잊지 못한다. 심지어 억지로 맞은 중전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모든 게 중전의 뜻대로 될 것이요, 원하는 것 또한 다 갖겠지요. 그러나 내 마음만은 욕심내지 마시오. 절대 가질 수 없을 테니.” 연우가 이승에 없다는데도 혼인하지 않고 그와 꼭 닮은 모습으로 나타난 무녀 월에게 또 다시 “나는 안되겠느냐”고 애원하는 양명군 역시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해품달’은 배신과 말 바꾸기가 판치는 세상, 언제 갈라설지 몰라 결혼 1~2년 뒤까지 혼인신고도 하지 않는다는 세상에서 일편단심이 얼마나 그리운 단어인지 일깨운다. 첫사랑, 사고, 기억상실증, 주위의 방해, 운명적 만남이란 구조가 ‘겨울연가’와 대동소이하다는 걸 보면 쿨한 사랑이 대세라는 지금도 순애보의 힘은 막강한 모양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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